격투기 UFC를 즐겨 본다. 옥타곤 안에서 피 터지게 싸워 승부를 가리고야 마는 방식이 마음에 들어서다. 말이 스포츠지 우리에 가둬놓고 벌이는 싸움질이라는 이도 많다. 그래도 마니아들은 열광한다. 잔인하고 징그럽다는 아내의 핀잔과 잔소리에도 심야시간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눈치껏 UFC에 빠져든다.
승부를 보려면 그래야 한다. 끝장을 봐야 한다. 어정쩡하면 안 된다. 찜찜하게 앙금을 남겨서도 안 된다. 5년 전 겨울 18대 대선을 떠올려 본다. 하나마나 한 TV 토론이었다.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못한 지를 가리기 위한 배틀이 아니었다. 시간 때우기였다.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 결과는 국민들이 아는 대로다. 지금 장미 대선을 맞고 있는 것이다.
TV 토론이 달라졌다고 한다. 13일 한 번 했을 뿐인데도 화제다. 19일 또 한 차례 치러지는 것을 포함해 아직 네 번이나 남았는데 이 정도면 성공작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강도는 세질 거고, 재미도 더 있을 거다. 무엇보다 긴장도가 장난이 아니다. 그렇고 그런 저녁 TV 프로보다 훨씬 흥미롭다. 하루 종일 같은 소리를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했다가를 반복하는 종편 프로와도 질적으로 다르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모셔놓고 벌이는 '배틀'이라서 그런지 수준도 높았다. 맞장 토론도 가능해졌고, 반박에 재반박도 이어졌다.
토론의 재미도 재미지만, 지역별로 진영별로 몰표가 쏟아지는 현상이 사라진 것도 이번 대선에서 TV 토론 몰입도를 높여주는 대목이다. 중도층, 부동층, 유보층이라는 이동 가능한 표(스윙 보터)들이 많아진 선거라는 말이다. 특히 갈 곳을 잃은 영남권과 보수층 표심에는 TV 토론이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도 있다. 대구경북에서 TV 토론 주목도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
후보들이 기울이는 공도 이전 선거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TV 토론 등 미디어 의존도는 그만큼 커졌다. 만사를 뒤로하고 TV 토론에 '몰빵' 하려는 후보도 있다.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약발을 제일 잘 받는다는 게 이유다.
지난해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와 힐러리의 스탠딩 끝장 토론을 보며 부러워하는 이들을 많이 봤다. 우리가 미국처럼 되려면 갈 길이 멀다. 이번 대선에서 많이 달라졌다지만 아직이다.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를 위협했던 샌더스 상원의원의 돌풍 같은 게 나오려면 고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토론 시간이 너무 짧다. 심야라면 방송시간에 구애도 덜 받을 텐데 두 시간으로 한정한 건 얼른 이해가 안 된다. 토론 강도가 높아지면 시청률도 장난이 아닐 텐데. 왜 그랬을까? 더구나 우리는 출연자가 다섯 명이나 되지 않는가. 사회자까지 포함할 경우 한 후보에게 주어진 시간은 20분이 채 안 된다. 그 안에 후보자는 무엇을 보여주고, 유권자들은 무엇으로 판단을 하나. 족집게가 아니고서야 알 길이 없다. 서 있는 게 불편하고 힘들다면 앉게 해서라도 세 시간, 네 시간짜리 토론을 붙이면 될 텐데 말이다.
대통령의 자질과 품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횟수도 늘려야 한다. 다섯 번으로는 부족하다. 당사자들끼리 합의만 한다면, 문재인-안철수 양강의 끝장 토론이라고 못 할 것도 없다. 홍준표-유승민의 보수 적통 뽑기 양자 대결도 볼만할 것이다. 커트라인을 상향해서 출연자를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한다면 장을 만들어줄 매체는 널려 있다.
하나 덧붙이자면 피 터지게 싸워 승자를 가리는 UFC에 사람들이 열광하듯 대선 후보들을 옥타곤에 가두고 끝장을 보는 방식으로라도 TV 토론을 붙여봤으면 좋겠다. 누가 지도자감인지 우열은 금세 판가름날 것이다. 더 나은 후보를 대한민국 새 지도자로 뽑기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다. 나라와 국민이 더 중하다. 후보 몇몇이 나가떨어진들 어떤가.
UFC 방식. 누군가는 절실히 원하겠지만 누군가는 피하려 할 것이다. 유권자들은 어떻게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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