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호 기자의 '개사랑'] <2> 반려견 쌤과 제주 올레길 정복기

입력 2017-04-11 04:55:01 수정 2019-04-05 00:30:15

흙길에선 금세 '헉헉'…험한 산길에선 진짜 '개고생'

'강민호 기자의 개사랑' 코너에서는 반려견을 키우는 강민호 기자의 일탈 생활을 들여다봅니다. 반려견 '쌤'과 함께 일상을 벗어나 경험하는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반려견과 가질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과 더욱 다양한 정보를 찾아 소개하겠습니다. '강민호 기자의 개사랑'은 한 달에 한 번 LIFE면 애완동물 코너에 실립니다.

반려견과 여행을 마치고 나면 개와 사람이 서로의 성격을 아주 상세히 파악하게 된다. 각자의 습관부터 인성(혹은 견성)을 인지하고 나중에는 서로 눈치 볼 타이밍까지 알게 된다. 진짜 기막히게 친밀해진다.

사람 간에는 여행을 가면 아주 친해지거나 원수가 돼 돌아온다고 하지만 개와 사람이 원수가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일단 개와 사람은 주종관계가 확실하고 말싸움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말 그대로 애견인(愛犬人)이니까 내 새끼 성격이 괴팍하다고 해서 갑자기 미워하지는 않는다.

오늘은 반려견과 걷기 좋은 올레길 코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여행에서 루트(Route)는 매우 중요하다. 어떤 길을 걷느냐에 따라 인간이나 개의 기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1-1 우도코스

미리 설명을 드리자면 우도는 개와 걷는 산책길로는 최고와 최악의 조건을 동시에 갖췄다. 먼저 좋은 점. 우도가 좋은 이유는 사람 눈이 즐겁고 반려견이 걷기에도 산책로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우도는 제주도 안에 있는 작은 제주도다. 고층 아파트나 네온사인으로 변해버린 제주도가 아쉽다면 우도에서 제주스러움(?)을 찾을 수 있다. 자동차가 많아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우도는 제주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도에서 보는 성산 일출봉 경치는 특급 보너스다. 쌤이 걷기에도 우도는 최고의 올레길이었다. 땅의 단단하기가 걷기에 안성맞춤이라 전체적으로 폭신한 우레탄을 걷는 듯했다.

우도를 걸을 때는 쌤에게 소리칠 일도 많았다. 30초에 한 대씩 차가 쌩쌩 지나는데 쌤이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두리번거렸던 것이다. 아직 솜털도 안 간 새끼강아지라 세상이 다 신기하겠지만 나도 아직 미숙한 애비(?)라 일단 소리부터 내질렀다. 새끼를 세상에 내놓는 부모 마음이랄까? 며칠 전 우도 입도(入島) 차량을 제한할 계획이란 뉴스를 봤다. 제발 하루빨리 시행되길 바란다.그럼에도 1-1 코스를 추천하는 이유는 우도 올레길 상태가 최고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도지석묘 뒤로 나 있는 올레길과 차량 진입이 안 되는 마을길은 진짜 제주스러운 제주길이다. 특히 우도지석묘는 초입까진 관광객으로 넘쳐나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인적이 드물다. 산책길 바닥 상태도 좋고 거리도 적당하다. 우도는 섬 전체를 둘러보는 데 성인 남성 속보로 4~5시간이면 가능하지만 전혀 심심하지 않다. 우도 입도 차량 제한안을 낸 제주도의원에게 경의를 표하며 1-1 올레길 우도 소개는 여기까지 하겠다.

#산책로 종합세트 21코스

21코스는 쌤 없이 혼자 걸었다. 여행 막바지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다. 개랑 함께하지도 않은 올레길을 굳이 소개드리는 이유는 21코스가 그만큼 반려견과 걷기에 환상적이기 때문이다. 쌤과 함께 걸었던 나머지 12개 코스보다 이곳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절대 혼자 걸어서가 아니다.

21코스는 제주도의 땅과 바다를 동시에 걸을 수 있는 멋진 코스다. 제주도풍(風) 마을을 걷다 보면 해안가 모래사장이 쭉 펼쳐지기도 하고 금세 사람이 북적이는 인파가 나타나기도 한다. 산책길 종합세트다. 가능하다면 21코스는 당근 수확철인 1, 2월에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당근 숲은 매우 특별한 산책로다. 당근 향을 맡으며 걷다 보면 춤을 출 수도 있다. 나도 쌤 없이 홀가분하게 걷느라 덩실덩실 춤을 추며 걸었다. 비교적 인기가 적은 코스인지 인적도 드물었다. 반려견과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다양하고 멋진 길이다.

#반려견을 배려한 일정으로

쌤과는 올레길 12개 코스를 걸었다. 나는 어떤 일이든 계획 짠다고 유난 떠는 건 질색이지만 쌤과 동행하는 일정은 그 나름 철저히 준비했다.

올레길 각 코스마다 후기를 읽고 어떤 길이 있는지 파악했다. 날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당일 아침 쌤의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어느 코스를 걸을지 결정했다. 비가 올 것 같으면 포장도로를 걸었고 맑은 날에는 작정하고 걷는 거리를 늘렸다.

정말이지 사람이든 개든 어떤 길을 걷느냐에 따라 기분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면 나는 흙길이 쭉 이어진 1, 2코스를 좋아하지만 쌤은 금세 지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벽증이 심한 쌤이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모래사장에서 엉거주춤 걸었지만 쌤은 날아다녔다(정말이다). 내가 객기를 부린 탓에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험한 산길이 이어지는 9코스에서는 진짜 '개고생'했다. 폭설도 문제였지만 9코스 자체가 새끼강아지에겐 히말라야급 등산로였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올레길 정복은 매우 특별하지만 그만큼의 준비가 필요하다. 반려견과 장기간 여행을 준비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개를 처음 키울 때와 비슷한 정도로 고민의 시간을 가지고 떠나시라. 물론 다녀오면 이만한 추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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