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에밀 타케와 왕벚나무

입력 2017-04-11 04:55:01

여기저기 봄 소식이 한창이다. 아침저녁 쌀쌀함이 남아 있지만 하얀 냉이꽃 사이로 노랑 나비 나풀거리는 모습은 겨울이 저만치 갔음을 이야기한다. 매년 이 계절이 되면 남쪽 바다 진해에서부터 서울 여의도까지 전국이 벚꽃 이야기다. 대구만 해도 두류공원이나 팔공산의 벚꽃길이 유명하고, 동구의 금호강변이나 달성군 용연사 가는 길의 벚꽃들도 볼만하다. 이들 벚꽃 길에 심어진 나무는 벚나무 중에서도 꽃이 크고 개화 수량도 많아 벚꽃 중의 왕이라는 왕벚나무가 대부분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꽃이 만개했을 때 하얀 구름을 뒤집어쓴 것같이 화려하여 가장 선호하는 품종이 된 것이다.

지금은 벚꽃 구경을 봄날의 낭만으로 쉽게 이야기하지만, 한때는 일본 문화를 상징한다 하여 사쿠라로 낮춰 부르며 미움과 배척의 대상이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왕벚나무 자생지가 우리나라 제주도임이 알려지면서 벚꽃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곳곳에 벚꽃길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벚꽃을 찬미하는 노래가 이 계절 빠질 수 없는 레퍼토리가 된 것만 봐도 왕벚나무의 위상이 높아진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왕벚나무 자생지가 대한민국임을 밝혀 국민적 사랑을 받게 한 이는 한국인이 아니다. 선교사로 구한말 우리나라를 찾은 푸른 눈의 이방인 에밀 타케(한국명 엄택기, 프랑스 출생) 신부가 그 주인공이다. 초기에는 마산, 제주도, 목포, 나주 등 우리나라 남쪽지방에서 활동하다 1922년부터는 대구 남산동에 있는 성유스티노신학교(현 대구가톨릭대학 유스티노캠퍼스)에서 근무했다. 이후 1952년 이국 땅에서의 삶을 마무리할 때까지 30여 년간 그에게 대구는 삶의 터전이고 고향이었다.

에밀 타케 신부가 식물학자로 명성을 쌓은 시기는 제주도에서 활동할 때다. 온주밀감을 처음 도입하여 감귤농업의 기반을 열었으며, 1만여 종의 식물을 채집하여 영국, 미국, 프랑스 등으로 보내어 우리나라 식물들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채집된 식물 중 하나가 왕벚나무이다. 1908년 4월 15일 제주도 한라산 북편 해발 600m 지점에서 채집된 벚나무 표본이 독일 베를린대학으로 보내지고 왕벚나무로 인정됨으로써 그 자생지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이다. 벌써 110년 전의 일이지만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대 상황과 식물에 대한 무관심으로 지나치다 근래 들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것이다.

대구 중구 남산동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내에는 오래된 왕벚나무 몇 그루가 있다. 왕벚나무를 세상에 알린 에밀 타케 신부와의 관련성이 언급되어 수목 전문가들이 조사했다. 나이테 검사 결과 가장 오래된 것이 수령 90살 정도로 1920년대 에밀 타케 신부가 신학대학에 근무할 때 심었던 나무(교구청 내 안익사 옆)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으로 여기저기 갈라지고 썩은 부분이 있어 치료도 하고 주변을 정비하였다. 부러질 우려가 있는 가지는 지주목을 세우고, 울타리도 만들어 답압에 의한 피해도 없도록 하였다. 그리고 왕벚나무 자생지를 알린 일을 기억하고자 에밀 타케와 왕벚나무라는 이름으로 안내판도 설치하였다. 올해부터는 투어 코스도 만들어 식물학자로서의 업적과 대구의 근대 여명기 우리와 고락을 함께한 그의 발자취를 만나는 자리도 마련한다고 한다.

해마다 만나는 벚꽃이지만 한 번쯤은 사람에 치이는 번잡함을 벗어나 에밀 타케의 왕벚나무를 만나 보는 것은 어떨까? 남산동 교구청 내에는 숲을 이룰 정도로 많은 양은 아니지만 군데군데 벚꽃들이 피어나고, 새소리 바람 소리는 덤으로 만날 수 있다. 고즈넉한 한옥을 배경으로 떨어지는 벚꽃 잎에서 에밀 타케의 미소를 만난다면 이번 봄은 좀 더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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