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대 이은 도공, 청자와 분청 장점 살린 '다중분장기법' 개발
'묵심도요'(默心陶窯'경북 구미시 선산읍)에서 도자기를 짓고 있는 이학천(56) 도예 명장은 뼛속까지 도공이다. 그는 7대째 도예 가문을 잇고 있다. 그의 정규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이다. 중'고교 과정은 검정고시로 마쳤다. 하지만 그는 1995년 미국 뉴욕 브리지포트 예술대학에서 명예석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도자기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다.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 외에는 독학으로 도예를 익혔다. 그리고 도자기 명장이 됐다. 그는 오늘도 작업실 '묵심도요'에서 도자기를 짓고 있다.
◆7대째 가업 이어
그는 퇴계 이황 선생의 집안인 진성 이씨 24대손이다. 18세기 중엽 영조 때 할아버지 이명태를 시작으로 7대째 도공의 맥을 잇고 있다. 이 명장의 아버지 이정우는 평생 전국의 도요지를 찾아다니며 도자기를 연구했다. 이런 이율 이 명장은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어릴 때 그림을 잘 그렸던 이 명장의 장래 희망은 화가였다. 그러나 그는 도공이 됐다. 이에 대해 그는 "운명"이라고 했다. "휴일이나 방학 때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 가면 자연스레 흙을 만졌다. 열 살쯤에 아버지가 지은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면서 도자기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했다.
도자기에 재미를 붙인 이 명장에게 흙과 물레는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다. 초교 3학년 때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께 주병(酒甁)을 만들어 선물로 드렸다. "'잘 만들었다'며 칭찬을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이후 아버지는 알고 지내던 도공들에게 아들의 재능을 빌려줬다. "성형된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일이었는데, 잘 했던지 이집저집 많이 불려다녔다"고 회고했다. 그는 지금도 도자기 위에 마치 살아있는 듯, 생명력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종이에 그리는 것보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게 어렵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명장이 22세 되던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6대째 가업을 이은 아버지는 10남매 중 혼자 도예가로서의 삶을 사셨다. 저도 8남매 중 혼자 가업을 잇고 있다"고 했다.
◆'다중분장기법' 개발
이 명장은 타고난 도공이다. 그는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와 각종 기능경기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2002년 대한민국 도예명장으로 지정된 데 이어 2006년 경북도 무형문화재로도 지정됐다. 2007년에는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이런 화려한 경력 뒤에는 그만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이 명장은 휘어 있는 자신의 손가락을 보여줬다. "오랫동안 힘을 줘서 도자기에 조각을 하다 보니 손이 조각칼에 맞게 저절로 굽었다"고 설명했다.
이 명장은 청자와 분청의 장점을 살린 '다중분장기법'을 개발했다. 다중분장기법은 흙을 색깔별로 여러 겹 입힌 후, 이를 파내는 식으로 다양한 색을 도자기에 구현하는 방식이다."일본이나 중국 도자기는 현란하게 색을 입혀 언뜻 보기엔 화려하지만 쉽게 피로해진다. 하지만 이 방식은 자연의 색깔이 서로 조화를 이뤄 화사해도 시각적으로 피곤하지 않은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명장은 요즘 일본인이 즐겨 사용하는 찻사발인 이도다완을 재현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제대로 된 이도다완을 재현하기 위해 흙을 구하고 성형, 유약, 굽기까지 수도 없이 만들고 또 만들며 연구했다. "이제 기술도 알았고, 흙도 구했다. 이제 만드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그는 이제 겨우 도자기가 무엇인지 '감'(感)이 온다고 했다. "고려시대는 청자,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와 백자가 대표했듯이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저의 남은 인생의 목표"라고 했다.
◆ 성형부터 굽기까지 전 과정 혼자 해내
이 명장은 40여 년 도예가의 삶을 살면서 1987년, 2012년 딱 두 번 개인전을 열었다. 단 한 번도 도자기판매점 등에 작품을 팔아 달라고 내놓은 적이 없다. 문하생도 키우지 않고 있다. 이런 고집은 밥만 먹고 살 수 있다면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더 중요하다는 자신만의 예술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명장은 " 어느 것이 맞고 더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고집했다"고 말했다.
이 명장은 도자기를 '만든다', '굽는다'는 말 대신 '짓는다'는 말을 사용한다. '밥을 만든다'는 말 대신 '짓는다'고 하는 것과 같은 뜻이라고 했다. 도자기는 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흙에 정신을 불어 넣고 생명처럼 태어나게 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 명장은 도자기 성형부터 그림, 조각, 유약을 칠하고 가마에 굽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한다. 도공의 길로 접어들면서부터 익힌 그만의 노하우로 전 과정을 혼자 해낸다. 그래야 진정한 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 도예는 종합 예술이다. 그 무엇 하나도 소홀할 수 없는 분야"라면서 "저의 낙관이 찍힌 작품을 만드는 데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린다는 것이 용납할 수 없어 혼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름 새긴 도자기 미술관 건립할 터
이 명장은 도예가로서 두 가지 할 일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7대째 이어온 도예가문을 정립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작품 3천 점을 만들어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도자기미술관에 전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작품 전시는 물론 쓰임새, 제작과정, 교육 등 우리나라 도자기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 명장은 지금까지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고 했다. "이 작업은 나이 들어서는 못한다. 전성기에만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지금이 완숙한 작품을 할 수 있는 시기"라고 했다.
이 명장은 이를 위해 심사위원, 대학 강의 등 대외활동을 모두 접고 오직 작품에만 몰두하고 있다. "저는 교육자가 아니라 도공이다. 연구하는 도공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그가 작업을 하고 있는 곳의 이름은 그의 선친이 지어준 아호 묵심(黙心)을 따서 묵심도요이다. "아버님은 도자기를 짓는 일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늘 말씀하셨다. 마음자리를 어떻게 쓰냐에 따라 그릇도 되고, 산도 되고, 하늘도 되고, 선과 악이 될 수 있다."
이곳에서 온 정성을 다해 도자기를 짓고 있는 그는 "도자기 짓는 일은 매력을 넘어 마력 같은 게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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