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고 싶지만 돈 걱정에 수술 후 치료 포기
김시태(가명'72'여) 씨가 초인종 소리에 현관으로 나가더니 금세 방으로 돌아왔다. "노인네가 죽진 않았나 싶어서 금요일마다 근처 복지관에서 찾아와요. 월요일에는 동주민센터에서도 사람이 와서 얼굴만 보고는 가더라고."
지난해 봄 위암 진단을 받은 김 씨는 돈 걱정이 먼저다. 얼른 낫고 싶다는 바람보다는 병원비 걱정이 앞선다. 올해까지 세 차례 위 절제술을 받았고, 수술비 500만원은 친구에게 빌렸다. 푼돈도 아끼며 근검절약하는 친구는 망설임 없이 김 씨에게 목돈을 건넸다. "그 귀한 돈을 받아 쓰고 내 마음이 어찌 편하겠나. 돈 빌리고는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가 없어요. 평생 남에게 신세 지며 돈 걱정만 하며 살다 보니 병이 걸렸나 싶기도 하고…." 김 씨는 지난달 정기검진을 받았고 앞으로도 3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받아야 한다. "6월에 또 오라는데 병원비 낼 돈이 없어 대답을 못했어요."
◆위암 수술 세 차례…수술 후 치료는 포기
지난해 3월 김 씨는 쓰디쓴 입맛 탓에 식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온몸에 기운이 쭉 빠졌고 속은 찌릿찌릿하게 아팠다. 동네 의원에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을 때 김 씨는 덜컥 겁이 났다. "5년 전 위 내시경을 했을 때 콩알만 한 혹이 있었거든. 그걸 내버려뒀는데 문제가 생긴 것 같대요."
김 씨는 대학병원에서 혹을 절제했고 조직검사 결과 암 진단을 받았다. 김 씨는 의료진의 만류에도 절제 수술을 받은 당일 퇴원했다. "노인네 병원비를 누가 대준다고 입원을 해. 기어다니더라도 집에 가야지." 암은 지난해 두 차례 재발했고, 큰 종양이 두 개나 발견됐다. 수술 후 의식이 혼미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던 김 씨는 5일 만에 다시 퇴원했다. "퇴원하려니 병원 사람들이 말리더군요. 그래서 링거 주사를 빼고 나와버렸어요. 집에 오는 길에 어지러워서 서너 번은 쓰러질 뻔했지."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는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항암화학요법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김 씨는 치료를 포기했다. 형편이 어려운 탓에 겨우 약만 지어서 먹는다. 혈압약, 당뇨약, 신장약, 우울증약 등 하루에 10여 가지의 약을 먹는 김 씨의 입에선 쓴 내가 가시질 않는다.
◆어렵게 사는 자녀에게 아프다 말도 못해
김 씨는 17살에 왼쪽 눈의 시력과 한쪽 청력을 잃었다. 무너지는 담벼락에 깔려 몇 시간 동안 흙더미에 갇힌 탓이었다. 극적으로 구조된 그는 흙과 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부기가 너무 심해 치료하지 못한다고 했다.
"시골에서 자라다 보니 일할 곳이 없었어요. 집안일을 거들다가 23살에 결혼했는데 남편이 몹쓸 사람이었어." 남편은 매일 술을 먹고 들어와 김 씨를 때렸고 세 자녀를 낳고는 아예 집을 떠났다. 김 씨는 세 자녀를 홀로 키웠다. 아이를 업고 남의 집 가사일을 도우며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그렇게 살았으니 애들을 학교에나 제대로 보냈겠어. 애들이 나이가 40, 50대인데 제 앞가림하기도 어려워해."
김 씨는 자녀에게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다. 어렵게 사는 자녀들과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다. 큰아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데다 당뇨가 심해 별다른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큰딸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고, 작은딸은 최근 이혼을 하고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애들이 날 도와줄 형편이 안 되는데 속상하게 뭐 하러 얘기를 하겠어. 그냥 모르는 게 서로 마음이 편해." 지난해 8월 기초생활수급비 50만원이 끊기면서 김 씨의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다. 기초노령연금 20만원으로는 약값을 대기에도 모자라 끼니를 거르기 일쑤다. 김 씨는 이날도 보건소에서 가져다준 묽은 영양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한 움큼의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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