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대선을 앞둔 이코노미스트의 단상(斷想)

입력 2017-04-05 04:55:05

서울 출생. 관악고. 서울대 무역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국 통화재정팀장. 한은 부설 경제연구원 부원장
서울 출생. 관악고. 서울대 무역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국 통화재정팀장. 한은 부설 경제연구원 부원장

뿌리 깊은 저출산 문제 대책 세울 땐

사회문화 정책 포괄 종합적 접근을

경제 공약 보수·진보 진영 논리 빼고

시장경제 공정 경쟁 원칙 강조돼야

대선까지 약 한 달 남았다. 준비 기간이 짧은 만큼 대권을 꿈꾸는 후보들이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유권자들 모두 마음이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필자는 선거 때마다 당파정치(partisan politics)와 경제 간 관계를 생각하곤 한다. 비록 일선에서 뛰는 정치인도, 전문적인 정치 분석가도 아니지만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경제 문제를 오래 고민해 온 이코노미스트로서 필자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현재 진행 중인 이번 대선의 중간 관전평을 겸하여 밝히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정리해 보았다.

첫째, 선거 출마가 표를 구하는 정치 행위라는 점에서 진영논리를 완전히 배제하긴 힘들겠지만 경제 문제에 관한 한 선거 공약(경제 공약)은 가급적 진영논리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지적하는 이슈들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노동시장을 예로 들어 보자. 한편에서는 보수 진영이 지적하듯이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과도한 게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진보 진영이 언급하는 수많은 '미생'이 존재하고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러 문제가 병존할 때 이들을 분리하여 개별적으로 접근하기보다 한데 묶어 동시에 해결책을 모색하면 경제적 시너지 효과를 도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파정치의 장벽을 넘어 개혁의 추동력을 살리는 이점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경제 공약을 통해 정당의 정체성을 굳이 드러내지 않더라도 비경제적인 이슈들을 통해 정당의 정체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대선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으로서 후보의 이름을 가리면 진보 진영 후보의 것인지 보수 진영 후보의 것인지 판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 공약에서 진영논리의 퇴조 현상이 두드러진다. 양손잡이 이코노미스트(two-handed economist)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탓인지는 몰라도 필자로선 이런 현상이 반갑기만 하다.

둘째, 경제 이슈라 하더라도 원인이 국민 의식이나 사회문화적 관습에 있는 경우도 많은 만큼 경제 대책에 국한된 대응보다는 사회문화 정책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저출산 대책을 예로 들어 보자. 출산 가정에 대한 감세 혜택이 대표적인 저출산 대책이지만 이것이 효과를 보기에는 저출산 문제의 뿌리가 너무나도 깊고 다양하다. 필자는 저출산 원인으로 높은 청년실업, 높은 집값'전셋값 그리고 높은 사교육비라는 삼고(三高)를 꼽고자 한다. 이 중 청년실업과 집값'전셋값 문제는 경제 정책의 영역에 속하지만 높은 사교육비 문제는 어느 대선 예비후보가 국민투표를 통해 과외를 금지시키자고 제안할 정도로 사회문화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한 필자의 생각은 공교육의 경쟁력을 배양하는 동시에 압축성장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의식에 고착된 경쟁 지향적, 물질 만능의 가치 체계를 수정하는 국민 의식 개혁 운동을 병행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입신양명이나 부의 축적처럼 외형적 잣대로 잴 수 없는 무형의 다양한 가치들이 인생 가치(lifelong values)로 존중받는 풍토가 조성되지 않는 한 사교육 광풍은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인생 가치의 다양성이 확보된다면 합리적 개인주의가 뿌리내려 혈연, 지연 그리고 학연으로 찌든 한국 자본주의의 고질병도 치유하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거가 우리 경제의 근간인 시장경제와 공유하는 원칙을 강조하고자 한다. 익히 알려진 대로 선거와 시장경제 모두 공정 경쟁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전에 합의된 게임의 법칙을 참여자 모두 존중하는 분위기가 성숙될 필요가 있다. 이는 공정 선거의 경험 축적이 시장경제의 창달에 귀중한 사회적 밑거름이 됨을 의미한다. 경쟁의 결과 못지않게 경쟁의 절차가 중시되고 이를 통해 승자와 패자 모두 성장하는 선순환 기제가 작동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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