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적용 허점, 지역조합엔 면죄부

입력 2017-04-05 04:55:05

농협 상무들 수십만원 돈 모아 조합장·이사 연수경비로 제공

지역농협 상무들이 수십만원씩의 돈을 모아 조합장 등 상사에게 건넨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에 반하는 일이다.

하지만 농협중앙회 직속 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역농협은 면죄부를 받는 것으로 확인돼 법률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4일 다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포항 지역농협인 A농협 조합장과 상임이사, 비상임 이사 등 10명은 지난달 22일부터 3박 5일 일정으로 태국으로 관광연수를 떠났다. 여행의 경비는 1인당 100만원으로 책정됐다.

그러나 조합장 등이 개인적으로 부담해야할 여행경비 상당 부분은 상무들의 주머니에서도 나왔다. 조합 상무 8명 중 6명은 20만원씩, 지난 2월 상무로 진급한 1명은 100만원을, 나머지 1명은 경비부담에 불만을 느껴 돈을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모인 220만원은 조합장 등의 여행 경비로 쓰였다. A농협 관계자는 "식사 등에 보태 쓰라는 뜻에서 자발적으로 모았다. 별다른 의도가 없는 순수한 뜻이었다"고 했다.

이처럼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이들은 '청탁금지법'을 피해갈 것으로 보인다. 국민권익위 등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청탁금지법 제3조의2(공직유관단체) 따라 '공무원 등'에 포함되는 '공직유관단체'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농협중앙회나 직속 기관에서 A농협과 같은 일이 벌어지면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 반면 중앙회 소속이 아닌 지역농협은 일반 사기업과 같은 시각으로 해석돼 '공무원에게 금품을 제공하거나 부정청탁을 하는 경우'에만 이 법을 저촉하는 것일 뿐 다른 사안이라면 빠져나갈 수 있다. '관례'나 '자발적'으로 수십만원의 돈을 상납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셈이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중앙회 이사 조합장만 청탁금지법에 해당하며, 지역농'축협에선 법적으로 공무수행상 업무를 위탁받은 이들만 적용 대상"이라고 했다.

제보자 B씨는 "인사권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금품을 상납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법 취지에도 어긋난다"며 "농협중앙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업무를 하는 곳이 지역농협이다. 아무리 교육을 해도 윗사람들의 인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법을 개정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포항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청탁금지법에 해당할 가능성이 적다면 다른 혐의를 적용해서라도 이런 적폐를 뿌리뽑아야 한다"며 수사 의지를 드러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