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내 스승…많은 대화 나누면서 병 원인 찾죠"
김영조(65) 심혈을기울이는내과 원장은 병원 문을 닫을 무렵 방문한 노인 환자와 오랫동안 대화를 했다. 혈압약을 처방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불안해하며 다시 병원을 찾은 환자였다. 김 원장은 다시 한 번 환자의 진료기록을 꼼꼼히 살피고 환자를 다독였다. 환자가 일어서자 김 원장은 "오늘은 진료 안 했으니 병원비 내지 마시라"고 웃었다.
김 원장은 "환자와 오래 얘기를 나누는 편"이라고 했다. "심장질환 환자는 '죽을 병'에 걸렸다는 마음에 일부러 증상을 감추는 경향이 있어요. 검사에서 이상이 없는 경우도 있고요. 이럴 때 성숙한 의사의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하죠."
30년 넘게 심장내과 전문의로 일한 그는 스스로 '미생'이라고 불렀다. 의학에 완성이 있을 수 없고, 배움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는 이유다. "다 같은 고혈압이라도 환자마다 병의 원인과 증상, 치료법이 달라요. 뭐든 10년 만 하면 전문가가 된다던데 의사는 30년 넘게 해도 어려워요. 허허."
◆환자와 대화 속에 치료의 실마리 있어
김 원장은 "정년을 채운 대학병원 교수가 개원한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그는 33년간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올해 초 자신의 병원을 열었다. 김 원장은 "원로 교수가 되면서 환자를 치료할 때 한 발 뒤에 물러서야 하는 처지가 불만이었다"고 했다. "원로 교수라고 한가하게 손 놓고 있으면 좋을 것 같죠? 그렇지 않아요. 진찰을 하고 수술도 들어가고 싶은데 제가 나서면 후배들이 배울 기회가 없어지잖아요. 포기해야 한다는 게 항상 아쉬웠죠."
김 원장은 노인 환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환자들의 하소연을 끝까지 들어준다고 소문난 덕분이다. 그는 "환자가 스승이고 환자의 말에 답이 있다"고 했다. 환자의 이야기 속에 병과 치료법의 실마리가 담겨 있다는 뜻이다. "2년 전, 몇 번이나 이유 없이 쓰러진 40대 남성이 온갖 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나를 찾아왔어요. 아무리 검사를 해봐도 특별한 원인이 없었는데, 환자가 '빵을 먹고 바쁘게 움직이면 꼭 쓰러지더라'는 말을 무심결에 하더라고요. 그 말을 적어뒀다가 의학 학술지를 찾아보고 '밀 알레르기'가 원인인 걸 알아냈죠. 빵을 먹고도 혈압이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의사생활 28년 만에 그 환자 덕에 배운 셈이에요."
그는 "훌륭하고 위대한 의사보다는 환자가 원하는 의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에게 완치 가능성이 크지 않고 비용이 많이 드는 수술을 권하는 의사가 과연 옳은 걸까요? 환자와 가족의 처지를 고려해 그들이 원하는 치료법을 찾아줘야죠." 김 원장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 의사는 항상 유리한 위치에 있으므로 의사가 조금이라도 애착 있게 환자를 대해야 한다"고도 했다. "의사가 환자의 불안을 잠재워주면서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줘도 웬만한 환자들은 금세 좋아진다니까요."
◆공부 위해 보직도 마다해
그는 인생의 절반을 교수로 살았다. 1984년 영남대병원이 문을 열 당시, 김 원장은 혈관을 뚫는 치료를 하는 유일한 심장내과의였다. "심혈관 질환은 분초를 다투는 질환이잖아요. 그런데 나 혼자 심혈관 질환 환자를 다 봤으니 얼마나 정신없었겠어요. 비번 날 술 먹다 전화를 받고 막힌 혈관 뚫는 날도 허다했죠."
김 원장은 쉰 살 무렵 대학의 모든 보직에서 물러났다. 공부와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학술대회에 다니느라 주말을 바쳤고, 평일에는 대구시내 심장내과 교수를 모아 분기별로 의학 학술지를 엮었다. 여러 학회의 학회장을 역임했고, 지금도 이곳저곳 학회에 불려다닌다. "회장도 열심히 참석해야 되는 거지 나이 들었다고 주는 건 아니에요. 내가 또 술을 잘 먹거든요. 학회가 배우고 술 먹는 대회(학술대회) 줄임말이거든. 허허."
백발이 희끗한 그의 취미는 최신 IT기기를 모으는 것이다. PC와 노트북은 물론이고 태블릿PC를 제조사 별로 여러 대 갖고 있다. 태블릿PC는 들고 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데 주로 쓴다. "전자기기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요.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15년이 다돼가요. 저장해둔 그림만 7천 장이 넘을 거예요."
젊은 시절 붓글씨를 쓰던 그는 2003년부터 컴퓨터로 붓글씨를 썼고, 다양한 서체에 색깔을 입혀 그림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사진 편집 전문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포토샵으로 작업한다. "필요한 기능만 골라 배우면 포토샵도 크게 어려울 게 없어요. 애플에서 만든 노트북 '맥북'은 색감이 뛰어나서 맥북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요."
얼마 전 딸이 골라 준 그림 68점을 모아 수필집을 낸 그는 "앞으로는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병원 이름처럼 심혈을 기울여 환자를 돌봐주시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건강관리 잘해서 오래도록 환자 곁에 있어야죠."
사진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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