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1987년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기로 한 이래 7번째 대통령 선거지만 이번처럼 대구경북이 '심심한' 선거를 맞은 적이 없다. 몰표로 정권의 향배를 가르는 데 일익을 담당했던 대구경북이었는데, TK가 어떤 TK였는데. 이번은 그럴 것 같지 않다.
1987년부터 2012년까지 집단적으로 움직인 TK 표심의 시각으로 과거를 되돌아보자.
1987년 첫 직선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는 대구 출신의 노태우(이하 직함과 존칭 생략)가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과 대결을 벌였다. 당연한 것처럼 TK는 고향 사람인 노태우에게 몰표를 줬다. 양김(김영삼, 김대중)과 정주영의 3파전이었던 1992년 선거에서는 '우리가 남이가'를 내세운 YS를 선택했다. 정권 내내 TK 정서 논란이 있었지만 TK가 YS 정권의 일익을 담당한 것은 팩트였다.
1997년과 2002년 선거에서는 TK의 선택이 성공하지 못했다. 1997년 김대중-이회창의 대결에서 이회창을 선택했고 고배를 마셨다. 2002년 선거 역시 그랬다. 노무현-이회창의 대결에서 '한 번 더' 이회창을 지지했고 실패했다. 드디어 2007년. 10년간 내줬던 정권을 되찾아왔다. 이명박-정동영 대결에서 묻지도 않고 이명박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압승'했다. 그때 사실 대구경북은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 편에 더 기울어져 있었다. 지지 국회의원 분포에서도 박근혜 우세였다. 그러나 승자는 이명박이었고, 본선에서도 고향 사람 이명박에 표를 몰아주었다. 박근혜가 되면 좋지만 이명박도 나쁘지 않았다. 박근혜는 다음에 하면 되니까, 이런 생각이었다. 2012년 대선은 박근혜의 일방 독주였다. 80% 투표율, 80% 지지율이라는 '경이적인' 80-80 기록이었다.
대구경북의 표는 이처럼 몰표였다. 한눈도 팔지 않았다. 표의 '포트폴리오'란 단어는 사전에 없었다. 보수를 대표한다는 후보에게만 몰려가 표를 던졌다. 어쩌다 반대편에 섰던 정치인들은 도태됐고 왕따를 당했다. 유권자들도 다른 선택을 하기 힘들었다. 대구경북을 보수의 본산, 보수의 상징이라고 불렀고 보수를 내건 후보들은 대구경북을 찾아 고개를 숙였다. 'TK가 움직이면 판이 바뀐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과거에는 정말 그랬다.
이번에는 양상이 영 딴판이다. '몰빵'을 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예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이들도 눈에 띈다. 표를 줄 곳도 딱히 없지만 그나마 자신이 찍으려는 후보가 될 가능성도 없으니 선거에 흥미가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올인했던 박근혜 정권의 '허망한' 붕괴가 대구경북과 그 민심에 안겨준 충격이 너무나 큰 탓이다. 박근혜의 중도 하차는 TK 정치권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대안도 미처 마련해 두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선거 50일 전이라면 벌써 TK 표심은 확정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 후보라고 앞서지도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 후보에게 오히려 밀리는 판이다. 간판만 바꿔 달았지 궤멸된 박근혜 리더십의 대안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때문이다. 원인에 대한 진단과 적절한 처방도 없이, 탈이 심하게 난 환부를 과감히 도려내지도 않고 드레싱만 해서 반창고만 갈아 붙여 대고 있으니 민심이 그럴 만도 하다.
최근 대구경북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박근혜 리더십이 궤멸된 빈자리를 먼저 차지하겠다는 공세다. 체면치레로 마지못해 오던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진정성도 엿보인다. 정당과 진영을 가리지 않고 표를 달라는 모습이 그리 싫지 않다.
그래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치않다. 박근혜의 빈자리가 오롯이 실망과 허탈 그리고 배신감으로 바뀐 뒤 그대로다. 대체재를 쉬 찾을 것 같지도 않다. 술자리 안줏감으로 선거는 순서가 뒤로 한참 밀려났다. TK에게 19대 대선은 참 찐맛없는 선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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