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 디즈니작 리메이크, 흥행은 글쎄요
성에 상류층 흑인·백인 섞여
영국 연기파 배우 대거 등장
주인공 벨 캐릭터 변화 없어
'미녀와 야수'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지역에 전해온 전래 동화로, 오페라, 연극, 뮤지컬, 영화, TV 드라마에서 단골로 다루는 소재다. 우리의 '춘향전'이나 '콩쥐팥쥐'처럼 계속해서 변주되며 리메이크되는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원래 이야기는 대가족의 막내인 벨이 상인인 아버지가 야수에게 잡히자 아버지를 대신하여 성으로 들어가고, 언니들이 성에서 호의호식하는 벨을 질투하면서 그녀를 감금해 놓는 동안 야수가 죽어가다가 극적으로 해후한 벨 덕분에 왕자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스토리라인을 현대적인 인물 구조와 풍부한 사건들로 재가공하여 성공한 것이 1991년 작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였다. 이 작품은 '인어공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디즈니로 하여금 르네상스를 활짝 열어젖히게 한 작품이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는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 후보에 오르고,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애니메이션이다.
이번 실사판 '미녀와 야수'는 '드림걸즈'와 '브레이킹던' 시리즈를 만든 빌 콘돈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 역으로 세계적인 톱스타가 된 엠마 왓슨이 주인공 벨 역을 맡아 개봉 전부터 화제를 낳았다. 엠마 왓슨은 미국의 명문 브라운대학교에 다니는 수재 이미지가 있는 데다, UN 성 평등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하는 연설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각종 사회 활동과 정치적 발언으로 연기 외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소셜테이너이다. 그런 그녀가 벨 역할을 맡았다고 하니 '미녀와 야수' 팬들뿐만 아니라 엠마 왓슨에 의해 새롭게 탄생하게 될 벨 캐릭터에 많은 여성이 기대를 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지난해 커다란 화제를 모으며 흥행에서 성공하고,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엠마 스톤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뮤지컬 '라라랜드'의 여주인공 역할을 일찌감치 거절하고 '미녀와 야수'를 선택했다는 소식도 새로운 모습의 벨 캐릭터에 거는 기대를 한껏 드높였다.
결과적으로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서 그리 한 발짝 나아간 작품은 아니다. CG를 활용하여 야수 및 성의 물건들로 변한 하인들, 그리고 성의 그로테스크함이 환상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현대판 실사영화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일 것이다. 마을 사람들과 성 안 사람들이 한판 벌이는 전투는 잔인하고 실감 나게 표현되었으며, 모든 것이 끝난 후 사람들이 즐기는 축제는 화려하며 현란하여 성인 관객에게 만족스러운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더군다나 인종과 성 소수자를 고려한 캐릭터 분배는 찬사받을 만하다. 성에 사는 상류층 사람들이 흑인과 백인으로 골고루 섞여 있고, 마초적인 악당 개스톤의 친구 중에 게이 캐릭터가 포함되어 있어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불식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눈에 띈다.
하지만, 벨이 1991년 버전 벨과 비교하면 무엇이 달라지고 얼마큼 더 나아갔는지는 의문이다. 26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적으로 뉴 페미니즘 바람이 불고 있으며, 새로운 의식과 애티튜드로 무장한 젊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데 비해, 벨은 여전히 함께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을 비하하고 왕자의 등장을 기다린다.
엠마 왓슨이 드레스 속 코르셋을 거부했다는 뉴스로는 신세대 미녀 캐릭터를 바랐던 진보적인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 책을 읽고, 싫고 좋음을 마음껏 표현하는 말괄량이이자, 자신의 발로 야수의 성에 들어가 야수와 대면하는 벨은 1991년에는 충분히 독립적이고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2017년인 지금도 이전과 똑같은 벨 캐릭터와 플롯을 가진 영화는 화려한 시각 효과와 인상적인 캐스팅 향연에도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이완 맥그리거, 이안 맥컬런, 엠마 톰슨, 케빈 클라인 등 영국의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여 기쁨을 주지만, 영화를 보고 난 이후 개운치 못한 감정은 어쩔 수 없는데, 이는 바로 이 영화가 가진 올드함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리메이크 영화 사례 이상의 어떤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지는 못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과감하게 시도한 인종적 다양성과 동성애 캐릭터의 활용은 새로움을 부각하기 위한 양념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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