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내 마음의 안식처] (5) 아동문학가 신현득-의성 청학마을

입력 2017-03-17 04:55:01

의성군 신평면 중률리, 일명 청학마을에서 본 왜가리 서식지. 새들이 나무에 앉은 모습이 얼핏 나무에 달린 하얀 열매처럼 보인다.
절마당
의성군 신평면 중률리, 일명 청학마을에서 본 왜가리 서식지. 새들이 나무에 앉은 모습이 얼핏 나무에 달린 하얀 열매처럼 보인다.
절마당

'학'(鶴)이 고르고 고른 땅이었다. 제집 드나들 듯 60년째. 60년이면 제집이다. 사람들이 떼로 모여 사는 학을 구경하러 올 정도가 됐으니. 의성군 신평면 중률리, 아동문학가 신현득이 추천한 '내 마음의 안식처'다.

경북신도청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 직선거리로는 가깝다. 적어도 지도에선. 막상 중률리로 향하자 강원도 어느 산골 도로가 따로 없다. 구절양장 삽재고갯길을 넘으니 학이 간택한 요새가 점점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만난 마을 주민은 "오지도 이런 오지가 없었다"고 했다. 의성 다인에서 이 마을로 시집왔다는 그는 "지금이야 길이 나서 낫지, 예전에는 (오가기 어려운 게) 말도 못했다"며 혀를 찼다. 옛 중률초교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낮은 산이 사방을 막고 있다.

학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그즈음부터 찾아들었다. 날개가 하얀 백로, 잿빛의 왜가리. 마을 사람들은 백로와 왜가리라는 구별 없이 학으로 여겼다 한다. 주민들은 아무 곳에나 둥지를 틀지 않는 학이 날아든 것을 상서롭게 여겼다. 동네 이름도 자연스럽게 '청학(靑鶴)마을'이 됐다.

새로운 도로명주소도 청학길과 백학길이다. 군위와 경주에도 청학길, 백학길이 있지만 청학길, 백학길이 동시에 있는 곳은 의성 신평뿐이다. 학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곳이다. 신현득 작가가 젊은 시절 교편을 잡았던 중률초교도 최근 '왜가리 생태관'으로 바뀌었다. 2015년까지 신평 왜가리 축제장이었다. 주민들은 해마다 1천 마리가 넘는 새 떼가 머문다고 했다. 봄볕이 따시던 3월 중순 한낮의 새들은 나무에 매달린 듯 보였다. 하얗게 나무에 붙어 마치 하얀 나무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것 같았다.

작가가 즐겨 찾는 곳은 '절마당'이다. 새들이 노니는 것을 유유히 지켜보는 자리다. 마을 당산나무 아래다.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 당산나무는 느티나무, 소나무, 말채나무 등 세 그루. 셋 다 수령 200년 안팎의 보호수다. 매년 막걸리도 한 되씩 대접받는다. 보호수 세 그루는 중생구제 12대원(大願)을 세운 약사여래석불(경북도 문화재자료인 중률리 석불좌상)을 호위하듯 뿌리내렸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곳을 '절마당'이라 불렀다. 노거수 세 그루의 그늘은 넓었다.

"여름 한낮에는 온 마을 사람을 그늘에 품어요. 절마당에서 바라보는 백로와 왜가리의 곡예는 말로 표현할 수 없지요."

왜가리보다 백로의 수가 훨씬 많은 날은 청학마을 하늘이 하얀색으로 덮인다.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새들이 나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작가도 그 속에 섞여, 새 떼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림 속 꼬마가 된다.

"별종끼리 무리지어 사는 새죠. 백로와 왜가리는 화합의 길조지요."

복잡한 시국에 메시지를 던진 노작가의 혜안일까. 다름을 품어내는 청학마을의 풍경이 더없이 너그럽고 평화롭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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