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3월 10일,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54세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선출됐다.
서기장이 된 그는 "1970년대만 해도 미국과 어깨를 겨루었던 소련의 국력이 지금은 현저히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무능하고 부패한 당과 행정부, 지나치게 평등주의적인 소득 균형 정책에 따른 전문 인력의 의욕 상실 등을 꼽았다. 이를 극복하려면 '페레스트로이카', 즉 구조 개혁이 필요하고, 그것을 추진하려면 '글라스노스트', 즉 정보 공개와 민간의 자율성 증대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대외 정책 및 국방 정책 역시 혁신적이었다. 미국과 1985년 제네바 정상회담, 1986년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을 거쳐 1987년에 중거리핵전력조약을 맺어 상호 군축에 합의했다. 또한 1988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 철수,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 몰락과 독일의 통일을 묵인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결과적으로 소련 연방 구성 국가들의 독립과 소련 해체로 이어졌고 세계 질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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