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경북도청에 부는 '정치 바람'

입력 2017-03-10 04:55:02

경북도청을 출입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신청사를 처음 찾았던 날이 기억난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청사는 웅장하고 멋스러웠다. 그러나 짧은 겨울 해가 지면 신청사 주변은 어둠과 정적으로 빠져들었다. 도청 앞 신도시에는 공사 중인 건물과 빈터가 많아 컴컴하다. 도청이 '섬' 같다는 생각이 든다.

10일은 경북도청 개청 1주년이 되는 뜻 깊은 날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이다. 만약 탄핵 심판이 인용된다면 전국은 '대선 블랙홀'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경북도청에도 '정치 바람'은 거세게 불 전망이다. 그 중심엔 김관용 경상북도지사가 있다. 김 도지사는 지난달 14일 대구에서 '용포럼' 창립 대회를 갖고 대선 행보를 본격화했다. 탄핵이 인용되면 곧바로 대선 출마 선언을 공식화할 태세다.

대구경북(TK) 대선주자로서 장점은 많다. 전국 유일의 6선 단체장이 바로 그다. 경북의 세계화에도 남다른 공로가 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통해 경북을 세계에 알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새마을운동을 중국,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에 확산시킨 공로도 크다.

지방에서 평생을 보낸 그가 대선에 도전장을 내면 중앙정치의 첫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그 파고를 어떻게 헤쳐나갈지가 관전 포인트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갈 곳 잃은 '샤이 보수'와 박근혜정부에 헌신적이었던 TK 민심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김 도지사가 대선이라는 큰 홍수에 '노아'처럼 방주를 띄워 '보수의 씨앗'을 지킬 수 있을지가 과제인 셈이다.

김 도지사는 지금 전국을 돌며 자신을 알리는데 분주하다. 지난달 22일 베트남을 방문했다가 귀국한 뒤 곧바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독도 수호 범국민 다짐 대회'에 참석하는 등 연일 강행군이다. 이어 같은 달 26일엔 대구 중앙로에서 열린 박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는 '태극기집회'에 참석해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김 도지사는 서울과 대전, 광주, 창원 등 전국 주요 도시를 누비고 있다.

이 같은 김 도지사의 행보에 대해 '도정보다 선거가 우선'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는 최근 농민사관학교 설립 10주년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창원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경남도당 당원 연수에 참석했다. 농민사관학교는 김 도지사가 2006년 첫 도지사 선거에서 내놓은 1호 공약이었다. 김 도지사의 참석을 열망했던 담당 공무원들과 농업인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한 공무원은 "김 도지사가 참석하지 않아 반쪽짜리 행사가 됐다"고 푸념했다.

경북도는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관광과 산업에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지만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김 도지사는 사드 배치는 안보 문제라면서 일시적 피해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 도지사의 공백을 메우고 도정의 컨트롤타워를 맡아야 할 간부 공무원들도 내년 지방선거 출마설이 흘러나오면서 도정이 표류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퇴임을 앞둔 일부 간부 공무원들도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도청에 선거 열풍이 도미노처럼 불고 있는 것이다. 도정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앞두고 근시안적인 행정에 집중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보여주기식 행정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문제다.

개청 1주년을 맞았지만 도청 직원들의 마음속엔 우려와 걱정이 가득한 것 같다. 도청 직원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다. 피로도가 상당하다. 수뇌부를 비롯한 도청 간부들은 이를 직시해야 한다. 정치 바람, 선거 바람에 간부들도 정신 팔려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직원들의 사기 진작에 힘써야 하지 않을까.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열풍에 가세하고 있는 도청 간부들을 향해 도민들은 공복으로서의 초심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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