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사과가 먼저다

입력 2017-03-03 04:55:02

중 3때니까 꽤 오래된 일이다. 교복 입는 마지막 해라서 외출할 때도 교복을 고집했다. 초여름 어둑어둑할 즈음 학원 가던 길. 또래 남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뒤쪽에서 오더니 가슴을 확 만지고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사태 파악이 안 되고 황망하였다. 잽싸게 내빼는 뒤통수에 대고 나는 왜 소리 지르지 못했을까. '야, 이 미친놈아, 가다가 오지게 넘어져서 여름 내내 통기부스나 하거라. 이노무 시끼.' 그러나 실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고 숨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이것은 처음도 아니었고 몹시 심각한 편에 속하는 것도 아니었다. 성추행은 놀이가 되고 무용담이 되어 가볍게 떠다닌다. 그러나 피해자인 나는 내 탓부터 한다. 그 시간 그 장소 그 차림으로 가선 안 되었다고. 이 기괴하도록 왜곡된 자동반사 심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여성이 성폭력에 노출되는 것은 다반사다. 바바리맨은 학교 주변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고 심지어 가정 내에서도 성폭력은 발생한다. 학교, 종교기관, 직장, 온라인, 버스나 지하철, 전쟁터…. 일어나지 않는 곳이 어딘지 말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수년 전 대통령을 수행하던 대변인이 국격을 떨어트리는데 일조하더니 불과 몇 달 전에는 재외 외교관이 여기 동참했다. 그들은 상습 성추행범들이다. 국내도 모자라 국경을 초월한다. 되풀이되는 이 지긋지긋한 폭력.

내가 애초에 떠올린 내 탓은 잘 길들여진 착한 여자, 순한 여자, 희생하는 여자 전형에서 비롯되는 맥락 이해였다. 내 탓으로 돌리는 해악의 독소는 질기다. 자존감은 한참 동안 바닥을 기어다니고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스스로 부정된다. 남들은 창창하다는 미래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의미도 없다. 자해행위다.

여성학이나 페미니즘을 공부하지 않고서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여성은 참으로 용감하고 현명하다. 나는 공부를 하고서야 회복의 실마리를 얻었다. 그 상황에서는 어느 한순간도 내 탓이 아니다. 그로써 회복이 시작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필요하다. 가해자의 참회와 사과. 오염된 남성성, 열등감과 난폭성, 더러운 지배욕, 인간에 대한 무례함과 무지에서 저지른 범죄를 사과해야 한다. 드물지만 때로 피해자는 사과를 받지 않고서도 회복한다. 그러나 사과하지 않는 가해자는 자신을 용서할 근거가 없다. 사과를 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으면 같은 범죄를 되풀이하거나 다른 형태의 가해를 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과 다양한 차원의 성차별 정도는 조사대상 144개국 중 116위일 정도로 후지다.(국회입법조사처 발간 2016년 12월 '국제성평등지수를 통해 본 성 불평등 실태 및 시사점') 여기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곳이다. 그러니 한번이라도 성폭력을 저지른 자들은 사과부터 해라. 그 대변인은 다시 세상에 나타나 마이크를 잡고 있다. 웃기는 일이다. 이번에도 이 말은 유효하다. "한 놈이라도 잘못했다고 하라"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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