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궁합 잘 맞아 평생 고령서 진료할래요"
설명 알아듣지 못하는 노인 환자
자녀에 전화해 자세히 알려줘
숨어 있던 결핵환자 잘 찾아내
근무했던 지역 보건소 애 먹여
암 환자 꼼꼼히 살펴 상급병원 보내
"'시골의사' 무시할 땐 안타까워요"
민보람(38) 고령영생병원 내과 과장은 의사 가운 안에 칼을 막을 수 있는 방검복을 입고 있었다. 환자가 앉는 자리는 강의실에서나 볼 수 있는 일체형 의자였고, 'ㄱ' 자 모양의 책상은 환자 쪽이 막혀 있었다. 책상 아래에는 비상벨도 달아뒀다. 모두 7개월 전 겪었던 끔찍한 기억 탓이다.
지난해 8월 23일 오전 10시쯤, 김모(86) 씨가 진료실에 들어오기 전까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김 씨는 가끔 병원에 들러 고혈압약을 처방받던 환자였다. 김 씨는 귀가 어두운 것처럼 손짓을 했고, 민 과장이 환자 쪽으로 허리를 숙이는 순간, 주머니에서 날카로운 흉기가 번쩍였다. 민 과장은 흉기에 복부와 등을 깊숙이 찔렸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벌어진 '묻지마' 피습이었다.
중상을 입었던 그는 불과 2주 만에 진료실로 되돌아왔다. 왼쪽 가슴에 남은 30㎝ 크기의 흉터가 아물기도 전이었다. "주변에선 많이 말렸지만 일을 하면서 공포를 잊고 싶었어요. 제 잘못도 아니었고, 그저 운이 나빴던 거니까요. 환자들을 만나면서 안정을 찾았죠."
◆내과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학문
4년여 전까지 민 과장은 고령과 전혀 인연이 없었다. 대구에서 태어나 자랐고, 울릉군의료원과 청도 대남병원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기 전까진 도시를 떠나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시골의 노인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다. 어려운 의학 용어는 거의 쓰지 않았고, 치료 방법도 되도록 일상적인 언어로 설명했다. 노인 환자들이 의학적인 설명을 잘 알아듣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자녀에게 전화해 자세히 알려주기도 한다.
"시골의 노인 환자들과 궁합이 잘 맞더라고요. 정도 있고요. 제가 행여 실수를 해도 덮어주셔요. 또 대구 같으면 10분만 기다려도 화를 낼 텐데 여기서는 1분 동안 진료를 보기 위해 2시간을 기다리는 여유로움도 있어요."
민 과장은 "대학병원에서 배우고 익혔던 의료기술들을 모두 펼칠 수 있는 점이 시골 병원의 매력"이라고 했다. "중증 환자도 보면서 필요한 검사를 해주고 암도 찾아주고, 심장질환도 진단하는 '토털케어'를 하는 게 더 재밌고 보람 있어요." 그는 몸을 움직이길 좋아한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시작한 테니스를 아직 즐기고 있고, 농구 동아리와 탈춤 동아리 활동도 했다. 근무 중에도 한자리에 가만있지 않는다. 하루 200여 명에 가까운 환자를 보면서 내시경 검사도 하고 응급실 진료도 한다. 활달한 성격의 그가 외과가 아닌 내과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민 과장은 "내과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학문"이라고 했다. "배가 아픈 환자가 있다면 왜 복통을 느끼는지 도대체 이유가 뭔지 한 걸음씩 접근하면서 원인을 밝혀내는 거죠. 직관적인 외과와는 다른 매력이 있어요."
가끔 시골 병원, 시골 의사라며 무시하는 이들을 만나면 마음이 안타깝다. "중병을 앓던 환자가 돌아가셨는데 대구로 갔으면 살았을 거라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시골 병원에 와서 환자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정말 속상하죠."
◆소화기'호흡기'순환기 '올라운드 플레이어'
그가 머문 지역의 시'군보건소는 애를 먹는다. 숨어 있던 결핵 감염자들을 줄줄이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가 경주동산병원에 머물던 시절에는 1년 동안 결핵 환자를 450명이나 발견하기도 했다. 고령영생병원도 지난 201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적정성 평가에서 만성폐쇄성폐질환과 폐렴 분야 1등급(최우수기관)을 받았다.
민 과장은 '올라운드 플레이어'(all-round player)다. 내과 레지던트 3년 차에 호흡기내과를 전공해 기관지내시경을 익혔고, 공중보건의 시절에는 순환기내과 영역인 심장초음파를 배웠다. 이후 계명대 동산병원에서 임상강사로 일하며 소화기내과 분야에 집중했다. 전문적인 식견도 갖췄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소화기내시경 세부전문의와 한국심초음파학회의 심초음파 인증의, 대한내과학회 소화기분과 전문의, 미국심장협회 전문심폐소생술 인증 자격도 땄다.
관심 영역도 넓다. 의료경영이 궁금하다며 서울대병원 의료경영고위과정(AHP)을 수료했고, 영양학 분야인 한국정맥경장영양학회의 'KSPEN NST-PEP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정신건강의학과나 신경과 전문의가 없는 지역 특성을 감안해 대한치매학회 치매 진료의사 전문화 교육도 받았다.
"시골의 2차 병원이나 동네의원을 찾는 환자들은 대부분 복합적인 질환을 갖고 있어요. 호흡기내과를 한 덕분에 결핵 환자를 진단할 수 있고, 심장초음파를 할 수 있으니 숨이 차서 온 환자에게 심부전 진단도 내릴 수 있죠. 내시경 검사로 소화기질환 여부도 판단할 수 있고요."
암 환자를 진단해도 그냥 대학병원으로 보내지 않는다. CT를 찍고 조직검사를 해서 어떤 종류의 암이며 진행은 어느 정도 됐는지, 어떤 항암제를 썼을 때 효과가 있는지까지 다 조사해서 대학병원으로 보낸다. "그렇게 환자를 보냈더니 대학병원 교수로 일하는 친구가 '그럼 나는 여기서 뭐하꼬?' 그래요. 하하."
민 과장은 앞으로 지역사회 활동도 늘려갈 생각이다. 고령의 테니스동호회 활동도 계속하면서 지역의 사회복지시설을 다니며 진료 봉사를 할 계획도 갖고 있다. "지역민과 잘 소통하면서 평생 이곳에서 진료하고 싶어요."
사진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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