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의 문학노트] 김사부와 도깨비

입력 2017-02-25 04:55:05

김사부와 도깨비

"사랑을 모르는 놈 의사 가운 입을 자격도 없다. 사랑 없이는 진정한 치료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단 한 순간도 사랑을 멈출 수가 없다. 사랑을 멈추는 순간 내 심장도 멈춰 버릴 테니까!" '낭만닥터 김사부' 윤서정 대사 부분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도깨비' 김신 대사 부분)

드라마 두 편이 거의 동시에 종영했다. '낭만닥터 김사부'와 '도깨비'가 그것이다. 두 편 모두 분명히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풍경은 제법 달랐다. 종영하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김사부는 잊으면서 도깨비는 더욱 확장되는 현상을 보였다. 특히 청소년을 넘어 중년까지 여성들의 도깨비 사랑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 왜 김사부는 잊으면서 도깨비는 확장되고 있을까? 두 드라마가 방영되던 시기는 동시에 광장의 촛불집회 시간이기도 했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일들이 매일 뉴스를 통해 드러났다. 그만큼 광장도 뜨거웠다. 광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집단적 특수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바로 세상이 바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두꺼웠고 삶은 힘겨웠으며, 특히 다시 돌아온 일상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일상은 예전 그대로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가난하고, 힘들었다. 어쩌면 그러한 현상의 이면에 김사부와 도깨비의 현재의 풍경이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와는 너무나 다른 절박한 현실 앞에서 대부분의 드라마는 순간의 쾌감을 주다가 이내 잊힌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그랬다. 김사부가 개혁하려고 했던 의료계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인간에 대한 사랑보다는 돈이 서서히 지배하는 의료계에는 이미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같은 명제는 사라진지 오래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의사 자격도 없다. 사랑이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니까." 사랑의 절대함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것은 의사가 지녀야 할 환자에 대한 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그런 의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돈이 없으면 아프기도 어려운 것이 부끄러운 진실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의사들과 비슷한 사람을 발견하기도 어렵다. 어두운 현실이 드라마처럼 극적으로 바뀌지도 않는다. 이처럼 개인보다는 사회가 서사를 지배하는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시청자들에게 판타지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해 김사부는 쉽게 잊힌다. 볼 때는 행복하다가 지금은 불편한 풍경 한 자락이다.

하지만 도깨비는 다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서사가 존재하지만 그 서사는 사회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만든다. 10세기 고려든, 21세기 대한민국이든 다르지 않다. 공유와 김고은, 김동욱과 유인나만 있으면 된다. 나아가 원래 판타지임을 드러냈기에 드라마의 내용에 현실을 대입하진 않는다. 누구나 가슴 깊숙이 담고 있던 첫사랑의 판타지는 김은숙 작가 특유의 달달한 대사와 함께 지속적으로 불편한 현실을 감내하고 있는 우리들을 지배한다. 눈부시고 좋은 날들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돌아서면 절박한 일상이 우리를 기다리는데 꿈속에만 머물러 산다고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보는 내내 불편했던 내 마음속 풍경의 또 다른 한 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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