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꾼도 탐탁잖아했던 '아침이슬' 왜 금지곡 됐을까

입력 2017-02-25 04:55:05

동백아가씨는 어디로 갔을까/ 이영미 지음/ 인물과 사상사

시작한 지 60년, 끝난 지도 40년 가까이 됐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기에 대한 반추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신화적인 성장을 일궈내며 경제적으로는 부흥기였지만,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암흑기였다. 문화적으로는 어떨까. 특히 1960, 70년대 대중문화의 흥망성쇠는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 유신정권으로 이어지는 시대상만큼이나 기복이 크다.

문화평론가 이영미 성공회대 교수의 '동백아가씨는 어디로 갔을까'는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대마초 사건' '대중가요 검열과 금지곡 지정'과 같이 박정희 시대에 이뤄졌던 대중예술 통제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대중예술을 매개로 한 시대를 살펴본다는 건 간단하지 않다. '억압과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재단을 동원하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은 두터운 서술로 대중문화사를 딱딱하게 만들지도, 통념과 현상을 틀에 끼워 맞춰 나누지도 않아서 술술 읽힌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를 광복 후부터 이승만 정권기(1945~1960년), 4'19 혁명부터 제5대 대통령 선거(1961~1963년), 제5대 대통령 취임~제6대 대통령 당선(1963~1967년), 3선 개헌과 제7대 대통령 당선(1967~1971년), 10월 유신(1971~1975년)으로 나누고 정치적 사건과 시대를 반영한 대중문화사를 함께 살펴본다.

1961년 5월 24일 한 일간지에는 "'춤바람'에 군법의 심판"이라는 큰 기사가 내걸렸다. 서울'경기지구 계엄고등군법회의가 첫 재판을 열고 '땐스광' 47명의 계엄법 위반 사건을 심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계엄령 옥내집회 금지 조항을 적용받아 징역형을 구형받았다. 5'16 이후 무허가 댄스홀 단속은 댄스광 단속으로 바뀌었다. 단속의 초점은 '무허가'가 아니라 '사교춤'이었다. 사교춤을 금하던 시절, 허가된 곳이라도 여성 혼자 카바레에 가는 건 허용되지 않았다. 파트너를 구하려고 대구 국일카바레 앞을 서성이던 여성들의 죄목은 '도로교통법' 위반이었다. 사교춤을 보는 눈은 포크댄스, 살사댄스, 댄스스포츠를 보는 시선과 여전히 다르다. 이런 점에서 '장바구니 카바레'는 이 시대의 유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950년대만 해도 춤은 '교양'으로 여겨지기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춤은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졌고. '아프레걸'로 대변되는 자유주의적 풍속은 당돌한 도전이자 불편한 장애물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그렇게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 속 춤바람은 그 자체가 목표가 돼 두들겨 패도 되는 '동네북'이 됐고, 1950년대 자유주의는 군사정권에서 부패 척결의 기치 아래 사라져 갔다.

1965년 5개 방송국의 결의로 방송이 금지된 뒤 한국방송윤리위원회, 예술윤리위원회 등으로부터 방송 금지 또는 음반 금지 처분을 받았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역설적이게도 널리 불리다 못해 일본에서 취입하기까지 했다. 동백아가씨에 대한 금지 처분은 한일수교에 동반한 일본 문화 유입에 비판적인 여론이 들고일어나면서 시작됐다. 동백아가씨가 왜색이 짙다는 이유였다. 저자는 이 문제를 여론 탓보다는 이미자의 일본 진출을 사실상 용인하던 정부가 민족주의 문제를 단순화하면서 벌어진 건 아닌지, 그 때문에 대중문화 교류로 얻을 수 있던 이익도 날아간 건 아닌지 반문한다.

저자는 1970년대 꽃을 피운 청년문화와 정치적 진보성을 정권 또는 기성세대와 삼각구도에 놓았다. 근대화와 산업화로 심화한 물신화와 비윤리성에 대한 자각이 생겨나면서 전통문화 계승과 민주문화 창조가 청년문화의 핵심적 가치가 된 시기다. 이 시기 '데모꾼'들은 민주화 운동의 대표곡인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정권에 맞서던 학생운동 주체들은 이 노래를 껄렁대는 자유주의 감수성의 표현으로 치부했을 정도라고 한다. 또 김민기의 여러 노래 중 유독 '아침이슬'만 금지곡이 돼 저항성을 가지게 된 것이 석연찮다고 하면서 사회비판적 성격이 거의 없던 가수들이 오히려 대마초 사건에 연루된 배경을 설명한다. 저항적이지 않은 목소리, 다루기 쉬운 '날라리' '어중이떠중이'를 억누름으로써 정권이 명분을 가지게 된다는 것.

저자는 엇갈린 시선으로 대중문화와 정치사를 연결 짓는다. 이 때문에 이 책은 1960, 70년대를 거친 세대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애증을 환기시킨다. 서태지와 아이들, 빅뱅, 엑소에 열광하는 세대에겐 격변기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소개한다. 스타 작가 김수현의 작가 데뷔기 등 소소한 에피소드도 담겨 있다. 대중문화를 통해 시대를 읽기가 녹록지 않다는 것을 저자는 잘 아는 듯하다. 하지만, 대중의 무의식적 욕망은 '딴따라 문화'에 거침없이 드러난다는 점도 간과하지 않았다.

정권의 문화 통제에 대항하던 청년은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택했다. 댄스광과 자유부인, 동백아가씨와 아침이슬은 대놓고 저항하지 않아서 만만한 대상이었지만, 사라지지 않아서 다루기 어려운 '날라리'였다. 박정희 정권은 위험한 음반을 내고 사고를 치겠다던 김민기를 끝까지 내버려뒀다. 예술 탄압의 법적 사례를 남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얼룩진 현대 문화예술계와 대중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400쪽, 1만8천원.

※용어설명

아프레걸-'전후'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아프레게르(apre-guerre)의 신조어. 세계대전 이후 나타난 기존의 사상'관습을 무시하는 행동양식. '게르'가 '걸'(girl)로 바뀌어 자유분방하고 당돌한 여성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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