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고 싶어도 출판사 거절 일쑤…그래서 문학상 도전했죠"
등단 21년을 맞이한 중견 소설가 우광훈 씨가 제7회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 당선작 '뽑기맨'을 최근 출간했다. 그는 1997년 단편소설 '유쾌한 바나나 씨의 하루'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1999년 장편소설 '플리머스에서의 즐거운 건맨 생활'로 제23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2011년에는 시(詩) '1770호 소녀'로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도 당선됐다. 여러 문학상 당선뿐만 아니라 다수의 소설책까지 펴낸 중견 작가가 신인들이 주로 응모하는 공모 방식의(추천이 아니라) '문학상'에 응모하기는 쉽지 않다.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으냐?"고 물었다.
◇책 출판하기가 너무 어려워 문학상 도전
우광훈 작가는 "공모전 당선이란 게 나로서는 참 부끄러운 일이어서 한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온갖 훈장을 너덜너덜 달고 다니는 사람들, 나도 그런 사람들이 싫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되고 말았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 꼴 무안해질 것을 알면서도 그가 굳이 문학상에 응모한 데는 까닭이 있었다.
"소설을 완성한 뒤에 출판사에 출판을 의뢰했지만 다 거절당했어요. 책을 낼 때마다 매번 그런 과정을 거칩니다. 원고를 다 쓰고 출판사에 의뢰하고, 몇 달 동안 기다리고, 그러고는 거절당하는…. 가타부타 아예 대답조차 없는 곳도 있지요. 그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여러 번의 문학상을 받은 잘나가는 작가지만, 사실 한 권의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작가들 중에는 자기 돈을 들여, 자기 책을 출판하고, 자기 지인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으로 책 쓰기와 출판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책을 출간하고도 시중 서점 책장에 한 번 꽂히지도 못한다. 우리나라 전체 작가의 90% 이상이 그런 범주에 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출판사들이 책이 얼마나 팔릴 것인가에만 집중하고, 웬만해서는 출판을 꺼리기 때문이다.
우 작가는 "속된 말로 '오늘의 작가상'만 수상하면 쉽게 책을 출판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 착각이었다. 책 출판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런 곡절에 대한 반감으로 문학상에 응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문학상 당선작은 출판사에서 자동으로 출판할 테니 말이다"고 말했다.
◇실직한 아빠와 딸의 인형 뽑기 이야기
우 작가는 "이번 책 '뽑기맨'의 화자는 청소년이지만 청소년을 의식하고 쓴 작품은 아니다"고 했다. 화자는 청소년이지만 주인공은 성인인 아빠라는 것이다. 표면상으로 이 소설은 실직하게 된 아빠와 중학교 2학년 아이의 '인형 뽑기' 이야기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던 해 여름, 아빠는 허리의 심각한 통증으로 인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예상치 못한 질병과 실직으로 인해 한껏 위축되어 있던 아빠는 어느 날 우연히 원피스 피규어가 전시된 인형 뽑기 기계를 발견하게 되고, 나의 부탁과 호기심에 이끌려 뽑기를 하게 된다. 하지만 뽑기 상품이 기계 뒤에 걸려 버리는 참사가 발생, 그때 킹마트에 산다는 영감이 등장해 숄더어택이란 요상한 기술을 선보이며 아빠를 도와준다.
그날 이후, 아빠와 나, 영감은 환상의 뽑기 3인조가 된다. 학원이 없는 수요일 오후면 항상 뽑기 기계 앞에서 만나 뽑기를 하고, 산책을 하거나 수다를 떨기도 한다. 그렇게 뽑기에 대한 아빠의 관심과 열정은 점점 커져 간다. 그리고 결국, '대구 뽑기 기계 지도' 제작이란 원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영남대나 칠곡 쪽으로 뽑기 원정을 떠나기에 이른다.'
◇인식이 변했지만 최후의 안식처는 여전히 가정
이 소설을 통해 우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가족이다.
"소설 속 아빠는 허리를 다쳐 결국 실직하게 되죠. 그리고 엄마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며 위로의 말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무덤덤하게 반응하며 이런 말을 던져요. '왜 그래? 죽을병도 아닌데….'
그리고 아내는 부엌으로 향하며 한마디 덧붙이죠.
'나 지금 저녁 준비해야 돼. 애 밥 굶기고 학원 보낼 순 없어.'
소설 속 화자인 나와 아빠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4달이 지난 후, 그렇게 뽑기란 낯설고 신비로운 세계를 함께 경험한 후 두 사람은 그 말을 이해하게 되죠. 그 당시 엄마는 결코 아빠에게 무관심한 게 아니었다는 것, 그건 엄마만의 사랑법이었다는 사실 말이에요."
우 작가는 우리는 흔히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이해받거나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의 결론은 '가족' 이다.
우 작가는 "가족과 가정의 의미라는 게 많이 건조해지고 차가워진 건 사실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가정이 자신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 주기를 여전히 바란다. 삶이 아무리 곤고하더라도 우리는 가족이란 이름의 공동체 속에서 서로 위로받고, 사랑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은 소설가"
우 작가는 소설로 먼저 등단했다. 그리고 여러 권의 소설책을 펴낸 뒤 어느 날 갑자기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응모해 당선됐다. 시로 등단한 뒤 소설로 전향(?)하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소설을 쓰다가 시를 쓰는 경우는 드물다. 소설가냐, 시인이냐 물었더니 다른 대답을 했다.
"시인은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되고 싶어서 되는 게 아니란 생각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로도 다시 등단했지만 저 자신을 시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시를 쓴 적도 없고요. 하지만 소설가는 다르죠. 절실하게 쓰고 싶은 소재가 생기면 용기 내어 책상 앞에 앉으면 됩니다. 우직하게 한 줄 한 줄 문장을 만들어 가다 보면 소설이란 생명체가 눈앞에서 꿈틀꿈틀거리게 됩니다. 저는 이 지난한 과정을 용케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전 시인이 되고 싶은 소설가인 셈이죠."
◇나만의 기호로 나만의 소리 만들고 싶어
우 작가는 좀처럼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도 말을 많이 한다기보다는 듣는 편이다. 사실 어떤 면에서 '작가'는 귀를 기울이는 존재라기보다는 자기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기 세계,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많다.
작가들 중에는 설령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는다고 해도, 내면은 자기주장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많다. 우 작가 역시 '떠들지 않지만' '자기 소리'에 주목하는 사람이다.
"나는 떠들썩한 광장을 좋아하지만 잘 어울리진 못해요. 저 혼자만 어색한 거죠. 그래서 발견한 게 글입니다. 조용한 곳에 틀어박혀 나만이 알 수 있는 이미지와 기호들을 조합해 더없이 기묘한 형태의 날개를 만들어 나가는 작업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날개를 달고 나뭇가지에 달라붙어 한여름을 나만의 울음소리로 장식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작가란 길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죠."
그는 늘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드러나기 싫어서다.
"누군가를 응시한다는 게, 누군가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는 게 무척 힘들어요. 그래서 모자 속에 숨어 지내는 거죠."
◇허리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책상 의자에 앉는 사람
우 작가는 몇 해 전부터 심한 허리 통증을 앓고 있다.
"이번 소설은 다른 작품과 달리 쉽게 썼습니다. 그래도 몸은 힘들었어요. 허리 통증 때문에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났다가를 반복하면서 글을 쓰느라고요. 의사 선생님은 가능한 한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을 줄여야 통증이 줄어들 수 있다고 하시는데. 소설가에겐 최악이죠. 매일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도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고요."
그는 예술가를 '하나의 육체에 두 개의 인격이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비록 소심하나 놀라운 재능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창조자의 모습이 하나이고, 세속적인 성공과 화려함에 더없이 집착하는 속물적인 모습이 또 하나다. 그 모습이 바로 자신이라고 했다. 그렇게 본다면 '소설가'란 사람들은 '허리 통증'이라는 물리적 실체에 시달리면서도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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