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술인들에게 희망을] 정년 보장 시립단체 채용 가뭄…실력 있어도 응시조차 못해

입력 2017-02-16 04:55:02

소질·능력 키워줄 민간 전문예술단체 육성 나서야

대구국제오페라오케스트라(디오)와 극단 돼지는 대구산 문화콘텐츠가 전국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민간단체 육성정책은 직업예술인을 꿈꾸는 청년예술인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사진은 디오 단원들과 극단 돼지의 공연 모습. 매일신문 DB
대구국제오페라오케스트라(디오)와 극단 돼지는 대구산 문화콘텐츠가 전국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민간단체 육성정책은 직업예술인을 꿈꾸는 청년예술인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사진은 디오 단원들과 극단 돼지의 공연 모습. 매일신문 DB

직업예술인에게 '안정된' 일자리란 정말 쉽지 않다. 대구시립예술단처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전문예술단체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정년 60세가 보장된 자리인 만큼, 퇴직자가 발생하기 전 '신규임용'은 꿈조차 꾸기 어렵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이 2015년 봄, 바이올린 연주자 2명을 선발하기 위해 공모를 내자 60여 명이 몰렸다.

"음악'무용'연극 등 장르를 막론하고 시립예술단에 입단하기 위해서는 실력과 운 모두를 갖춰야 합니다. 최상위 후보자들 간에 실력 차이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실력이 뛰어나도 '신규' 자리가 나지 않으면 응시조차 해볼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형근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은 "이 때문에 잠재력과 실력을 갖춘 예술인들이 그들의 소질과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고 레슨이나 생계형 아르바이트로 내몰리게 된다"며 "문화예술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만큼, 시립예술단의 역할을 보완할 민간 전문예술단체를 정책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무 단체나 무턱대고 지원하자는 건 아니다. 대구의 문화수준을 높이고 다른 지역으로 팔릴 수 있는 '특화된 예술단체'를 선택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청년들에게 새로운 '예술가로서의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대구국제오페라오케스트라(이하 디오)가 대표적 단체로 꼽힌다. 디오는 2004년 대구오페라하우스 공연을 위해 임시로 구성되었다. 오페라하우스라는 건물은 있지만, 전속 연주단체가 없어 제대로 된 공연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디오는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오페라에 특화된 오케스트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이제는 그 실력을 인정받아 서울, 부산, 대전, 울산 등 전국적으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 달만 전국적으로 16회의 공연을 소화했고, 연간 70회 정도의 공연을 한다. 일반 지자체 교향악단 연주의 두 배도 넘는 횟수다.

그러나 이런 디오조차 해단을 고심했다. 대중가수들에게는 수천만원이 넘는 개런티를 주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클래식 연주는 홀대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단원들에게 최저임금을 주는 것조차 힘겨워졌기 때문이다.

박은지 디오 예술감독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50여 명의 단원들이 눈에 밟혀 해단을 포기하고, 그 대신 수당 위주의 비상임단원 제도를 만들어 겨우겨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디오 정도의 예술적 수준과 자립 능력을 갖춘 민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키워낼 수 있다면, 연간 10억원 예산 투입으로 100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물론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해도 직업예술인을 꿈꾸는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무한정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일자리가 전혀 없는 현실 덕분에 '예산투입 대비 일자리 창출 효과'는 오히려 극대화된다. 한국은행 자료(2010년 기준)에 따르면 10억원을 투입할 때 만들어지는 취업계수는 전체 산업 평균 7.0명에 불과하다.

대구 문화콘텐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극단 돼지(대표 이홍기)의 '오백에 삼십'이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을 내는 서민들의 삶을 코믹하게 풀어내는 이 작품은 대구출신 여성작가 박아정 씨가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았고, 대구의 연극인 이홍기 대표가 기획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등 대구의 힘만으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 부산, 광주, 울산, 대전을 비롯한 대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중소도시까지 장기공연에 들어갈 정도로 폭발적 인기다.

정책적 보완이 뒤따른다면 제2의 디오와 제2의 극단 돼지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대구의 문화예술 역량이 성숙해져 있다는 것이 문화예술계의 중론이다.

지역 예술계 한 중진은 "문화소비적 측면에서 시민들의 문화향수 기회 증진도 중요하지만, 이제 대구문화예술도 브랜드를 가진 '수출품'이 될 필요가 있다"면서 "과거 경제성장을 위해 수출주도형 제조기업을 지원했듯이, 이제는 문화기업(민간단체)을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구에는 대규모 공연장이 많다. 이 공연장마다 '특화'된 상주단체를 육성해 대구의 대표문화상품으로 만드는 전략도 청년 일자리 창출과 대구문화 융성이라는 측면에서 검토해 볼만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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