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날 김 의원은 기자회견장서 담담하게 원고를 읽어나갔다. 표정의 흐트러짐은 찾을 수 없었으나, 결심을 내리기까지 수없이 되뇌었을 고민의 깊이는 짐작할 수 있었다.
"공존하는 나라, 상생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저의 도전은 끝내 국민의 기대를 모으지 못했습니다. 시대적 요구와 과제를 감당하기에 부족함을 절감했습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셨던 국민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묵묵히 도와주었던 동지들,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제가 평생 갚아야 할 빚입니다."
지난해 8월 30일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페이스북에 "당권 불출마 선언 이후 사실상 대선 경선 출마를 준비해왔다. 저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대권 도전 의지를 밝힌 지 162일 만에 그는 대권 전선에서 이탈했다.
문득 '정치인 김부겸', 그 이름 석 자를 머릿속에 넣던 때가 떠올랐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둔 즈음, "한 지역구에서 4선 국회의원은 월급쟁이에 불과하다"며 민주당 당적을 지닌 채 '보수의 심장' 대구로 온 경기도 군포의 3선 의원인 그를 신기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해 총선서 그는 일반적인 예상을 깨는 많은 표를 받았으나 고배를 마셨다.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도 40%대의 득표율을 기록하고도 역시 떨어졌다. 그의 도전은 '희망을 보여줬다'는 생명력 없는 평가만 남겼다.
포기가 훨씬 수월했지만 그는 20대 총선서 다시 한 번 대구에서 도전을 선택했다. 그가 보여준 뚝심과 추진력, 진정성은 보수층의 마음마저 녹인 결과로 이어졌다. 그가 민주당의 '동토'(凍土)에 깃발을 꽂자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진정책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국정당화를 이어받았다는 평가가 당장 나왔다.
그러나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확장성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되레 TK 출신 야권 후보라는 한계에 발목이 잡혔다.
TK 정서를 외면한 채 진보 성향의 정책 개발에만 나설 수 없었던 그는 진보와 보수 양 진영 모두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다. 분권형 개헌이라는 국가 시스템의 체질개선안을 개발했고, 공동정부 구성안이라는 국민 통합안을 이끄는 계기가 된 개방형 공동경선을 제안했지만 힘이 실리지 않았다. 먼길을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치권은 여전히 이쪽 아니면 저쪽에 서기를 강요했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그는 대선후보 여론조사표에서 찾을 수 없는 이름이 돼버렸다.
그의 퇴장으로 '상생의 정치, 공존의 공화국' 외침을 더는 들을 수 없게 됐으나, 그가 TK에 싹 틔운 정치적 다양성마저 훼손되는 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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