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醫窓] 명절증후군이 사라지려면

입력 2017-02-08 04:55:02

명절이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환자들이 있다. '명절증후군'으로 잘 알려진 수근관증후군(손목터널증후군) 환자들이다. 평소에 겪던 손 저림 증상이 명절을 지낸 뒤 급격하게 악화됐고, 어깨까지 통증이 심해져 잠을 자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흥미로운 사실은 수근관증후군 환자 대부분이 여성들이다. 특히 40~60대 중년 여성들이 많다. 수근관증후군처럼 남녀 간에 발생 빈도가 뚜렷하게 차이 나는 근골격계질환도 드문 것 같다. 수근관은 손목 앞쪽의 피부조직 밑에 손목을 이루는 뼈와 인대들에 의해 형성되어 있는 작은 통로다. 이곳으로 9개의 힘줄과 하나의 신경이 손 쪽으로 지나간다.

수근관증후군의 원인은 정확하지 않지만 수근관을 덮고 있는 인대가 두꺼워져 손목 부위 수근관을 지나는 정중신경을 압박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정중신경이 압박을 받으면 초기에는 손가락과 손바닥이 저리거나 감각이 둔해져 기분 나쁜 느낌을 준다. 심해지면 손 부위 통증과 함께 손바닥 근육이 위축되거나 물건 들기가 힘들 정도로 힘이 약해지기도 한다. 더욱 심해지면 팔이나 어깨 부위까지 증상이 번진다. 명절을 보낸 여성들의 증상이 악화되는 건 명절 음식을 준비하느라 손목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동작으로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성에게 수근관증후군이 잦은 이유가 단순히 명절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여성들은 가사와 일, 그리고 육아까지 남성보다 더 많은 부담을 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평소에도 약한 증상을 호소하거나 잠재적인 수근관증후군 환자로 살아가고 있다. 다만 명절을 지내느라 손목을 집중적으로 쓰다가 증상이 악화돼 환자 수가 급격히 많아지는 것이다.

요즘은 남녀의 가사 분담이 자연스러운 시대다. 그러나 모든 연령층에 적용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남자를 부엌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던 부모 세대보단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시작 단계다. 남녀 차별 문화는 알게 모르게 아직도 우리나라 저변 곳곳에 깔려 있다.

요즘도 여전히 회사나 공공기업에서는 여성들을 꺼리는 현상이 남아 있고, 여성의 출산이나 육아에 대해 불이익을 주거나 여성들에게만 짐을 지우는 것도 현실이다. 보육시설 부족 현상이 사회적으로 심각하고 그에 따른 여성들의 육체적, 정신적 부담이 커지면서 결국 저출산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성들의 손목을 위협하는 잘못된 관념과 문화가 결국은 가정과 사회, 국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의 손목을 아껴주는 남성들의 작은 배려가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첫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사라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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