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콘셉트로서의 미술작품

입력 2016-05-23 18:02:11

1917년 미국 뉴욕의 '독립미술가협회' 전시장에 남자 소변기가 '샘'이란 제목으로 전시되었다. 마르셀 뒤샹에 의해 대량생산품 소변기가 미술작품으로 둔갑하는 순간, 그동안 미술작품이 지닌 인습적인 권위나 전통은 깨어지고 말았다.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예술이념을 전개한 뒤샹의 '레디메이드'에 의해 기존의 미술작품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작가의 손으로 제작된 창작물, 미적 감상의 대상, 원본의 개념, 창의성의 표현)은 전복되었다. 이로 인해 미술작품을 규정하는 객관적 기준과 일상 오브제의 구분은 무의미해졌고, 작품은 대단한 존재감을 상실하고 그에 대한 평가에서도 도전을 받게 되었다.

미술가의 행위를 최소화한 레디메이드 이후에는 작품 제작에서 '콘셉트'나 '아이디어'가 핵심 요소가 된다. 소재의 '사물성'을 탐구한 미니멀아트에서 작가는 아이디어 스케치만 하고 작품 제작은 공방에서 한다. 개념미술에서는 말 그대로 개념을 강조함으로써 언어와 프로세스의 측면을 부각시킨다. 모더니즘이 막을 내린 1960년대 이후 미술의 흐름에서는 개념이 강조되는 경향이다.

최근 조영남의 대작(代作)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다. 검찰은 타인이 대신 그린 그림을 자신의 순수창작물로 판매한 행위에 사기죄를 적용해 수사에 착수했다. 연예인의 유명세 덕에 고가로 작품을 팔면서 대작한 화가에게는 '열정페이' 수준의 보수를 준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아직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강원도에 살고 있는 대작 화가는 조영남에게 거의 완성된 그림을 그려 배달해 주었다고 한다. 작업실에서 작가의 지시에 따라 조수가 제작에 관여한 것도 아니고, 작품의 특성상 공방에서 제작될 수도 없는 이런 경우, '콘셉트'가 제작보다 더 중요하다는 주장은 억지스럽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도 그랬고, 설치미술가 서도호를 비롯한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 제작 과정에는 기술자와 조수가 참여한다. 작업실에서 작품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서도호는 자신을 '아트 매니저'로 규정한다. 데미언 허스터는 100명이 넘는 인력을 거느린 중소기업 체제로 작업하고 있다. 그의 '스핀 페인팅'은 작업실에서 조수들이 모터장치 위에 놓인 캔버스 위로 형형색색 물감을 들이부어 순간적으로 만들어지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구매한 세계 각국의 컬렉터들 중 그 누구도 이런 제작 방식을 모르지 않는다. 조영남의 작품을 구매한 사람들과는 판이한 상황이다.

만약 조영남의 대작 의혹이 사실이라면, 아무리 '유희성'(ludism)이 현대미술에서 통용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기상천외함으로 관람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예술행위도, 유쾌함을 추구한 것도 아니다. 관람객과 작품을 구입한 고객에 대한 명백한 모독 행위이다. '콘셉트로서의 미술작품'이란 이런 것에 적용되는 의미가 아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