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교∼범어네거리 치과 40곳 vs 봉화·영덕 내과 0곳

입력 2015-05-26 05:00:00

동네의원 지도 변화

경북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던 외과 전문의 D(41) 씨는 최근 대구 수성구에서 개원했다. 달서구 상인동이나 진천동 인근도 살펴봤지만 개인의원이 너무 많았다.

D씨는 "교통이 편리하고 전반적인 소득 수준이 높다는 점을 감안했다"면서 "건물 임대료가 비싸다는 점이 걸림돌이지만 자리만 잡으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최근 10년간 통계를 들여다본 결과, 대구경북 개원의들의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피부과와 성형외과는 중구에, 치과는 수성구로 집중되고,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만들어지는 곳을 목표로 삼은 개원이 줄을 잇고 있다.

◆대구 중구'수성구 집중 심해졌다

수성교에서 범어네거리까지 이어지는 1.5㎞ 구간에 문을 연 치과는 줄잡아 40여 곳에 이른다. 수성구보건소에 따르면 수성구에 있는 치과 169곳 가운데 범어 1동과 수성동 4가에 있는 치과 병'의원만 29곳이다. 전체 치과 병'의원 중 17%가 2개 동에 몰려 있는 셈이다.

임대료도 치솟고 있다. 범어네거리 주변 병원 임대료는 3.3㎡당 1천만원을 호가한다. 330㎡의 경우 보증금 5억원에 임대료가 월 500만원 수준이다. 관리비도 700만~800만원은 나온다. 그래도 병원이 몰리는 이유는 진입 장벽은 높지만 일단 자리만 잡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 동네 한 치과의원 원장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이 일대 치과는 4곳이 전부였는데 10년 만에 10배 가까이 늘었다"면서 "경쟁이 워낙 심하다 보니 폐원하는 치과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중구의 성형외과와 피부과는 대구백화점에서 통신골목까지 이어지는 동성로 5길을 중심으로 밀집한 점이 특징이다. 보톡스 등 미용 시술을 하는 일반의원도 올 들어 3곳이나 문을 열었다.

중구의 한 피부과의원 원장은 "유동인구가 많고 교통 편의성과 접근성이 좋아 젊은 층을 노린 미용'성형 병원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워낙 임대료가 비싸기 때문에 수가가 낮은 내과나 소아청소년과 등은 들어오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달서구'서구'남구는 정체

대구시에 따르면 2004년 1천98곳이던 대구의 동네의원은 지난해 말 현재 1천599곳으로 45.6%(501곳) 증가했다.

최대 증가세를 보인 달성군 개원의는 2004년 48곳에서 2014년 89곳으로 85.4% 늘었다. 이는 다사읍과 화원읍 등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들어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칠곡 3지구가 조성된 북구도 같은 기간에 의원 수는 138곳에서 231곳으로 67.3%가 늘었다. 수성구는 동네의원이 180곳에서 299곳으로 119곳(66.1%)이 새로 문을 열었고, 이시아폴리스와 신서혁신도시, 율하택지지구 등이 들어선 동구도 의원이 123곳에서 208곳(69.1%)으로 급증했다.

반면 대구시내 구'군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달서구의 경우, 동네의원은 2004년 299곳에서 지난해 335곳으로 12.0%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정신건강의학과와 외과, 신경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소아청소년과, 비뇨기과, 가정의학과 등은 10년 전에 비해 오히려 수가 줄었다. 기존 병'의원이 워낙 많다 보니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개발이 정체된 서구는 118곳으로 20.4%, 남구도 107곳으로 37.1% 증가하는 데 그치는 등 대구시내 평균 증가율에 못 미쳤다.

달서구의 한 개원의는 "상인네거리에서 유천교네거리까지 개원의만 줄잡아 100곳은 넘는다"면서 "인구 증가 폭이 크지 않고 이미 개원의는 포화 상태여서 개원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정형외과는 북구, 피부과는 중'수성구 집중

대구에서 정형외과가 가장 많은 곳은 북구와 달서구로 각각 25곳과 23곳이 있다. 외과는 대학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구가 28곳으로 가장 많다. 이비인후과가 가장 밀집한 곳은 달서구로 40곳이 모여 있고, 내과도 77곳으로 8개 구'군 중 가장 많다.

피부과는 전체 피부과 63곳 중 절반 가까이 수성구(20곳)와 중구(12곳)에 모여 있다.

반면 서구에는 전체 의원 118곳 가운데 52곳이 내과와 일반의원이었다. 신경과와 성형외과, 영상의학과는 각각 1곳밖에 없다. 달성군은 신경과와 정신건강의학과, 신경외과, 성형외과, 영상의학과 등은 단 한 곳도 없고, 대부분 내과와 외과, 소아청소년과, 이비인후과다. 모두 미용보다는 거주자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진료과목들이다.

진료 과목별로 의원 숫자도 요동을 쳤다. 동네의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내과는 2004년 222곳에서 지난해 302곳으로 늘었지만 증가 폭은 평균 증가율(46%)을 밑도는 36.0%에 그쳤다. 산부인과는 2003년 87곳에서 2010년에는 95곳으로 늘었다가 4년 만에 89곳으로 뒷걸음질쳤다.

반면 성형외과는 2004년 36곳에서 2014년 55곳으로 52.7% 증가했고, 피부과도 같은 기간 38곳에서 63곳으로 65.7% 늘었다. 2003년 단 한 곳도 없던 재활의학과는 10곳이 문을 열었고, 신경과도 9곳에서 20곳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개원의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증가 폭은 경제 상황에 따라 편차가 컸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인 2005~2007년에는 매년 6% 넘게 개원의가 늘었지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에는 전년도(1천390곳)에 비해 3.3%(46곳) 늘어나는 데 그쳤고, 2010년 이후에는 증가 폭이 1%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13년 1천583곳에서 지난해에는 1천599곳으로 단 16곳(1%)이 더 문을 열었다.

◆경북은 의료 기반 취약해져

문경에서 산부인과 의원을 운영하던 A전문의는 최근 달성군 다사읍으로 자리를 옮겼다. 간호 인력을 구하기 힘든 데다 환자 수는 갈수록 줄었기 때문이다. 홀로 분만실까지 운영했던 A씨는 버티지 못하고 대구로 돌아왔다.

경쟁을 피해 대구 인근으로 가기도 한다. 전문의 B씨는 최근 영천에서 개원해 피부미용'성형 분야를 주로 보고 있다. 대구시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느니 환자 수가 적지만 경영 부담이 적고, 고령의 동네 환자가 많은 대구권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경북은 전문 진료 과목이 편중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의원 1천190곳 중에 전문과목을 표시하지 않은 의원이 224곳으로 가장 많고, 내과 174곳, 일반의 153곳 등의 순이었다. 진료과목을 표시한 곳은 내과가 174곳이었고, 정형외과 82곳, 이비인후과 75곳, 소아청소년과 74곳, 외과 69곳 등이었다.

봉화와 영덕, 영양, 청송에는 내과가 한 곳도 없고, 노인들이 낙상 등의 사고로 많이 찾는 정형외과가 없는 곳도 군위와 봉화, 영덕, 영양, 청송 등 5곳이나 된다. 소아청소년과와 이비인후과도 칠곡 외에는 군 단위에서 아예 찾아볼 수 없고, 피부과도 군 중에서는 청도와 칠곡군에만 있다. 응급 환자나 중증 환자의 의료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원경 경북도 보건정책과장은 "보건소 등에 공중보건의를 배치해 1차 진료를 맡게 하고, 취약한 중증 질환은 지방의료원을 중심으로 기능을 보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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