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찾아갈 동굴은 '대야굴'이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옥동천 근처에 있다. 대야굴 근처에는 용담굴과 백골동굴, 고씨동굴이 있는데, 고씨동굴은 관람이 가능한 개방동굴이다.
대야굴에 가기 위해서는 옥동천이라는 하천을 건너야 한다. 문제는 강을 건너는 다리가 놓여 있지 않기 때문에, 장마철처럼 비가 많이 온 후 물이 많이 불었을 때에는 건너기가 쉽지 않다. 미끄러운 몽돌 강자갈을 밟고 건너야 하고, 물이 많을 때는 가슴까지 차오른다. 대야굴 안쪽도 물이 흐르기는 마찬가지인데, 아무래도 여름에 동굴 안에서 흐르는 동굴수(水)가 더 많다. 대야굴은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완만한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양상을 보이는데,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만큼, 여러 가지 이유로 물이 적은 계절(봄, 가을, 겨울)에 탐사하는 것이 유리하다.
대야굴은 석회동굴, 수평동굴로 분류되는데, 수평굴인 만큼 지난번에 나왔던 동굴들처럼 수직 등강, 하강 장비 없이도 간단한 탐사복과 랜턴, 헬멧만 준비하면 탐사가 가능하다. 이번 탐사는 완연한 가을에 이루어진 관계로 무릎 높이밖에 오지 않는 강을 쉽사리 건널 수 있었고, 입구 직전의 폭포도 말라 있어서 진입이 쉬웠다.
대야굴은 동굴수가 풍부하고 주변에 하천이 있어 박쥐가 많이 서식한다. 이 때문에 입구 부근에는 박쥐똥(구아노)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 구아노를 먹고사는 많은 동굴생물이 동굴생태계의 한 축을 이룬다. 동굴 안에는 이처럼 여러 종류의 동물이 살고 있는데, 특히 동굴 깊숙한 곳에 사는 진동굴성 생물의 경우는 각각의 동굴에서 독립적인 진화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원래는 같은 종의 생물이 동굴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로 진화한 경우들이 많다.
대야굴은 비교적 아름다운 종유석과 석순 등을 가진 동굴이지만, 한 줄기로 이루어진 단순하고 좁은 구조 탓으로 동굴생성물의 종류가 다양하거나 화려한 편은 아니다. 우리는 이번 탐사에서 동굴 측량을 실시할 목표를 가지고 입굴하였다. 동굴탐험을 하면서 그곳이 얼마나 넓은지, 어느 방향으로 어느 정도 나아가고, 얼마만큼 올라가는지, 얼마나 깊은지 등을 도면으로 나타내고 기록하는 작업이 동굴 측량이다.
우리는 입굴하기 전 측량도구를 꼼꼼히 챙겼다. 대야굴의 도면은 사실 그전에 그려 놓은 것이 있었지만, 그 지도가 맞는지 확인도 하고, 측량하는 훈련도 겸하는 목적이 있었다. 측량에 필요한 장비는 방향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나침반과 줄자, 수평고도의 차이를 알 수 있게 장치해 놓은 각도기, 측량하는 기점을 표시할 표식지, 측량한 내용을 기록할 기록지 등이 있다. 우리 팀은 입굴하면서 먼저 동굴 입구의 방향과 높이, 너이 등을 기록한 후 입굴을 했다. 퀴퀴한 박쥐똥 냄새가 우리를 제일 먼저 맞이하였고, 천장에는 박쥐들이 거꾸로 매달려 잠을 자고 있었다. 박쥐가 매달려 있는, 혹은 매달려 있기 쉬운 위치 바로 아래에는 틀림없이 박쥐똥이 쌓여 있었다. 모두 박쥐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지나갔다. 동굴은 박쥐들의 집이고 우리는 방문자이므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입구 첫 지점에 1번이라고 적힌 흰 표식지를 벽 한쪽 잘 보이는 곳에 놓았다. 여기서부터 2번까지, 2번에서 3번까지 방향과 거리를 재고, 얼마만큼 높아졌는지, 낮아졌는지를 측정하고 기록하여 나아갔다. 그냥 동굴을 탐사할 때보다 훨씬 번거롭고 힘든 작업이다. 전 표식에서 꺾이거나 너무 멀어 다음 표식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기에, 표식 하나로 적으면 5m, 운이 좋아 직선 구간이면 20m 정도 나아간다. 동굴이 아닌 바깥에서의 측량보다 훨씬 힘든 점이 많다. 꼬부라진 길과 어두운 시야, 울퉁불퉁한 바닥, 바깥과의 단절 등 어려운 점이 많다. 이번 대야굴 정도면 차라리 동굴 측량 중에서는 쉬운 편이다. 다른 동굴의 수직구간, 좁고 기어가는 구간을 측량하려면 엄청난 체력과 기술, 인내를 요구한다. 우리는 그렇게 계곡을 따라 표식지를 놓아나갔다. 물이 흐르는 구간이 대부분인 관계로 벽에 표식지를 부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4번에서 5번, 12m, 위로 20도' 등의 측량 내용을 복명복창하는 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그렇게 측량을 하면서 나가다 보니 어느덧 막장이었다. 대야굴의 막장 부분은 수면과 닿으면서 끝이 난다. 물이 샘솟는 이 막장도 언젠가 말라버리거나, 수류의 방향이 바뀌면 더 깊은 동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막장을 확인하고 온 길을 되짚어 나왔다. 들어갈 때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물도 많이 튀고 힘들었지만, 나가는 길은 물이 흐르는 방향과 나아가는 방향이 같아서 한결 걷기가 쉬웠다. 대야굴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탐사가 가능한 굴이었기에, 간단한 비상식량 정도밖에 챙겨가지 않았고, 나가서 저녁을 먹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바로 탈굴을 서둘렀다. 놓아두었던 표식지를 번호순으로 꼼꼼히 챙겨서 탈굴을 하는 와중에 너무 깨끗한 대원들의 동굴복이 눈에 들어왔다. 동굴에 들어와 묻은 진흙, 때가 오히려 대야굴의 동굴물에 씻겨 새 옷처럼 보였다. 대원들의 세탁 수고가 자동으로 덜어진 셈이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동굴을 나서 바로 앞 강변에서 즐거운 저녁식사를 했다. 이곳 행정구역이 김삿갓면이어서 김삿갓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와중에 대동강물을 팔았다던 봉이 김선달과 김삿갓을 너무 진지하게 헛갈려 하는 대원이 있어서 모두가 즐겁게 웃을 수 있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의 거주지와 묘, 문학관 등이 있어 김삿갓마을로 알려지게 되어, 지명을 그것으로 하였단다.
이번 대야굴처럼 입구도 가깝고, 옷도 더러워지지 않는 비교적 편안한 탐사도 가끔은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을 청했다.
김재민(대구산악연맹 일반등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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