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연탄

입력 2014-11-22 08:00:00

까맣게 태어나 빨갛게 살다가 하얗게 죽는 것은? 1960, 70년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답할 수 있을 이 수수께끼의 정답은? 연탄이다.

땔감 외엔 별다른 난방 수단이 없던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가장 흔했던 것이 무연탄이었다. 무연탄은 탄화가 잘되어 연기를 내지 않으면서도 잘 탄다. 이를 곱게 갈아 불순물을 걸러내고 원통형 압착기에 통과시켜 찍어내면 연탄이 탄생한다.

우리나라에 국내자본으로 만든 연탄공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47년 대구였다. 고 김수근 대성그룹 회장은 대성산업공사를 세워 연탄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가내수공업 수준이긴 했지만 연탄은 해를 거듭하며 1960년대 들어서는 쌀에 버금가는 생활필수품으로 거듭났다. 연탄은 서민들의 집 구들목을 따뜻하게 덥혔고, 연탄가게는 동네마다 있었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집집마다 빈 공간을 연탄으로 채우는 것이 월동대책이었다.

서민들의 사랑을 받던 연탄은 1980년 후반 들어 석유와 가스에 밀려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동네마다 있던 연탄가게도 사라졌다.

올해 대구 도시가스 보급률은 84.6%에 이른다. 베이비붐 세대엔 연탄이 추억이 됐고 이후 세대에 연탄은 그저 과거 난방 수단의 한 종류였을 따름이다. 연탄가게는 현재 대구 전지역을 통틀어 20여 곳이 남아있다.

세상은 변했지만 아직 연탄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연탄을 때는 곳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아직 대구시내에서 연탄으로 난방하는 가구는 근 5천 가구나 된다. 절반 이상은 도시가스나 기름 보일러를 사용할 수 없을 만큼 살림이 빠듯한 영세민이나 차상위계층이다. 이들에게 연탄은 여전히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는 유일한 난방수단이다.

1970년에 10원이던 연탄이 지금은 500원으로 올랐다. 그나마 정부가 보조금을 주며 가격을 통제한 결과다. 영세민들이 따뜻한 겨울을 나려면 방당 하루 최소 4장 정도는 태워야 한다. 대구에선 올겨울 적어도 1천800만 장의 연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겨울을 앞두고 연탄나눔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세상은 변한다지만 서민의 사랑을 받아온 연탄이 사라지는 것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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