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김유, 고구려 진수, 백제 정…목표, 연정 사이 치열한 신경전
왕경/손정미 지음/샘터 펴냄
때는 신라가 삼국통일 전쟁을 시작하기 직전, 무대는 계림(신라의 옛 이름)의 수도 왕경이다. 신라 화랑으로 풍월주에 오른 김유, 고구려 귀족 출신으로 신라군의 포로가 되어 김유 집안의 노예가 된 진수, 백제 장군 윤충의 딸 '정'의 시종이자 화신으로 '정'이라는 이름을 쓰며 왕경에서 장사를 하는 소녀 등 세 젊은이가 삼국통일 전쟁을 앞둔 폭풍 전야에 왕경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화랑 출신인 김유는 당시 무열왕 김춘추의 총애를 받던 영명부인의 아들로 고구려와 백제를 꺾고 삼국을 통일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통일신라를 건설하기 위해 그는 얼음 같은 물에 맨몸으로 뛰어들고, 높고 거친 산으로 군사를 이끌며 훈련에 매진하는 가하면, 학문에도 한 치의 게으름이 없다. 진수는 고구려 남부 다섯부를 다스리는 남부살이(남부대인)의 아들로 '선배'(고구려 최정예 군대인 조의군을 이끌 수 있는 관직)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귀공자다. 아버지가 신라와 전투에서 죽었다는 소식에 홀로 신라로 뛰어들었다가 붙잡혀 노예가 되고 말았다. 정은 백제의 명장 윤충 장군의 딸인 '정'의 화신으로 귀공녀 '정'을 대신해 신라와 당나라, 서역 등을 돌며 자신이 보고 듣고, 배운 것을 정에게 들려주겠다는 목표로 신라로 잠입한 여인이다.
김유는 삼국을 통일하고 싶어하고, 진수는 아버지를 죽인 김유를 죽여 복수하려고 한다. 정은 여인들에게는 한계구역으로 있던 학문의 세계, 이방의 세계를 확인하고 체화하는 것이 목표다. 두 남자는 개인적 목표와 원한 외에도 정에 대한 연정으로 충돌한다.
여인 정의 캐릭터는 미묘하다. 그녀는 고구려 출신 진수를 사랑하는 듯 하지만, 어느 새 김유에게도 끌린다. 김유를 죽여야 한다는 '숙부'의 말씀을 따르려다가도 멈추고 만다. 실현 가능성이 없었다기보다 김유를 죽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의 소리가 그녀를 막았던 것이다. 김유 역시 여인 정이 적국인 백제의 여인임을 눈치 채고 멀리하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자꾸만 끌린다.
세 사람은 당나라에 군사를 요청하는 신라의 견당사가 되어 당나라로 떠난다. 당나라에서도 세 사람은 각자의 목표와 연정을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인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연애 소설은 아니다.
소설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먼 이야기'로 간주되는 삼국의 이야기, 특히 동경(서라벌)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 속에서 동경은 한반도 동쪽 귀퉁이에 있던 작은 도시가 아니다. 동경은 한반도를 훌쩍 넘어 요동과 당나라, 서역까지 이어진 국제 무역의 도시, 국제 정치의 도시, 울퉁불퉁한 근육의 파괴적 힘과 여인의 세련된 춤이 한 곳에 녹아 있는 도시였다. 포로로 잡혀온 고구려 병졸들이 '이런 나라였다면 감히 전쟁을 하지는 못했으리라'라고 감탄하는 아름답고 거대한 도시였다.
지은이는 일간지 기자로 20년간 근무했다. 문학담당 기자로 꽤 오랫동안 문학과 인연을 맺었고, 학창시절부터 소설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했다. 그리고 형상화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밝히고 있다. 소설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보여준다. 323쪽, 1만4천원.
이동관 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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