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동굴탐험] Y계곡을 따라서 -환선굴(상)

입력 2014-10-30 07:12:34

환선굴(강원도 삼척시)은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개방동굴이다. 한 바퀴 둘러보는 데 한 시간가량 소요된다. 이 동굴은 미개방 구역이 개방 구역보다 훨씬 깊숙이 형성되어 있다. 평소 생태보호를 위해 개방이 잘 되지 않는 미개방 구역을 이번에 클린 케이빙(탐험한 사람들이 무심코 흘린 쓰레기나 배터리 같은 것을 청소해 동굴을 원상태로 되돌려 놓는 활동) 일환으로 탐방할 기회가 생겼다.

환선굴은 주 굴길이가 3㎞를 넘는다. 철제 데크와 계단, 난간 시설이 되어 있는 1.6㎞ 구간을 탐사하는 데도 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길이 험하고 물이 흐르는 계곡인 3㎞의 구간은 시간도, 체력도 많이 소비된다. 그만큼 식량, 보온, 조명, 안전 등의 준비가 많이 필요한 난도 높은 동굴이다. 필자는 타보지 못했지만, 요즘은 모노레일이 굴 입구까지 연결되어 있어 개방된 구간을 관람할 수 있다.

필자는 개방된 코스를 따라 Y계곡까지 간 다음 거기서부터 미개방구간인 Y2, Y3 계곡을 향해 나아갔다. 개방된 구간을 관람객과 함께 이동하던 중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들(필자 일행)이 이상한 가방을 메고, 헬멧에 헤드램프까지 달고, 철제 난간을 넘어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려 하자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사진을 찍으며 쳐다보았다. '왜 들어가느냐'고 물어보았다면 이유를 설명해 주었을 텐데 아무도 물어봐 주지 않아 대답할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

환선굴은 수굴(水窟)이다. 물이 계곡처럼 흐르는 동굴이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는 살아 있다는 뜻으로 생굴(生窟)이라고도 한다.

등'하강 장비는 필요 없지만, 12℃(목욕탕 온탕이 40℃, 수영장 물이 보통 25℃임을 생각하면 얼마나 차가운지 가늠하기 쉽다)가량의 물이 콸콸 흐르는 계곡을 무려 4시간 가까이 거꾸로 거슬러 오르기 때문에,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하다. 또한 동굴 안 계곡을 탐사하다 보면, 폭포를 만나는 경우도 있는데, 폭포수를 흠뻑 맞고 거슬러 올라가야 하거나, 발이 닿지 않는 위험한 낭떠러지를 통과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집중력을 요하는 활동이고, 한순간의 방심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Y계곡에 들어서면서 장비를 점검했다. 기본적인 헬멧과 헤드램프, 예비 배터리, 쓰레기를 담을 봉투와 배낭, 구급약품과 부목, 비상용 담요 등을 꼼꼼히 챙겼다. 수직 등'하강 장비는 필요하지 않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짧은 로프만 챙겼다. 탐사시간이 8시간이나 소요되는 만큼, 필요한 물과 식량도 빼놓지 않았다.

환선굴 미개방 Y계곡은 대부분 구간을 좁은 폭포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 끝이 안 보이는 폭포를 헤드램프에 의지해 거슬러 오르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길이 계속 구불구불하고, 동굴 물 흐르는 소리가 워낙 커 대원들 간의 거리가 20m만 되어도 서로의 빛과 소리를 확인할 수 없다. 그만큼 서로를 챙겨 안전하게 이동해야 한다. Y3 계곡 부근에서는 아주 좁은 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곳이 두 번 나온다. 덩치가 작은 사람은 무난히 지나가지만, 우리 일행 중에는 그렇지 못한 분이 한 분 계셨다. 동굴복을 입은 상태로는 구멍이 좁아 통과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옷을 벗었다. 모두들 웃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분은 옷을 머리에 이고, 군대에서 철조망을 통과하는 자세로 등으로 기어서 가까스로 좁은 구멍을 통과했다. 온몸은 진흙투성이가 됐다. 다행이었다. 어떤 이는 통과를 못 해 그곳이 그 동굴의 마지막 구간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럴 경우 다른 탐사대원들이 탐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그곳에서 혼자 쓸쓸히 기다려야 한다.

힘들게 개구멍(開구멍: 열린 구멍이라는 뜻의 동굴 은어)을 통과하여 다시 계곡을 만났다. 몸에 묻은 진흙이 금세 씻겨나갔다. 그렇게 계곡을 거슬러 위로 나아가는데 또 난관이다. 절벽을 기어올라가야 하는데, 길 위로 폭포수가 거세게 흐른다. 평소 암벽등반을 잘하고 대담한 대원 한 명이 먼저 힘겹게 거슬러 오른다. 몸에 로프를 묶는 등 혹시나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조심 또 조심하며 오른다. 힘겹게 등반에 성공한 후 자신의 몸에 묶었던 로프를 내려 다음 사람들이 로프를 잡고 하나 둘 올랐다. 떨어지면 5m 아래로 추락이다. 보통 폭포가 떨어지는 구간은 푹 파여 있다. 물에 뜰 수만 있으면 위험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드물게 떨어진 물이 소용돌이치거나 저수지 얼음구멍처럼 땅 밑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거기에 빠질 경우 헤어나올 수 없다. 다행히 우리 일행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모두 안전하게 폭포를 거슬러 올라 넓은 광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동굴은 좁은 구간도 존재하지만, 서울역 대합실만큼 넓은 광장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본 광장은 보통 편의점 정도 넓이와 높이 정도이다. 떨며 피곤해하는 대원들이 있어 보온병의 따뜻한 커피와 간식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체온이 많이 내려간 대원은 은박 돗자리와 흡사한 비상용 담요를 몸에 둘러 체온을 보존했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누군가가 흘린 배터리와 조그마한 몇몇 쓰레기들이 보였다. 쓰레기도 수거해야 하지만, 배터리의 경우 누액이 일어나면 거기서 나온 중금속이 동굴생태계를 파괴할 가능성이 커 긴급히 회수해야 한다. 동굴 안을 깨끗이 청소하는 등 클린 케이빙 소임을 다하고 나니 기분까지 좋아졌다.

김재민(대구산악연맹 일반등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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