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산자연학교를 떠나며…

입력 2014-02-15 08:00:00

10년 전 개인적인 소신으로 시작한 산자연학교가 이제는 교육부에서는 정식으로 인가된 대안학교로 학교의 위상이 많이도 높아졌다. 10년 동안 정든 곳을 떠나려니 시원섭섭하기도 하다. 산으로 치면 등산을 하다가 내려오는 기분이다. 또 한편으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다. 개인적인 성찰에 대한 부분도 있다. 학생들과 같이 자연을 배경으로 함께 학습하고, 동료애를 느끼며 지내다보니 정이 많이 들었다. 이제 와서 이 자리를 떠나려니, 학생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내가 그들에게 최선이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산자연학교는 폐교 학교를 부활시키고, 농촌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한 측면도 크다. 특히 대구경북지역에는 대안학교가 많지 않은데, 대안학교의 지평을 넓혀놓은 의의도 찾을 수 있겠다. 정부지원을 받아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 부모의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도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본당 신부님들과는 달리 내 경우에는 본당을 떠나 살았다. 처음엔 이 마을에 들어와 동네 여기저기 신고식을 하러 다녔는데 제가 아무개 신부라고 인사하자 "왜 신부가 남자냐"고 물은 할머니들 생각도 난다. 지금은 나더러 '동네 신부' 또는 '마을 신부'라고 부른다. 돌아보면, 참 흐뭇한 시간이었다.

정든 산자연학교를 떠나며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조금만 양보하면 우리 사회가 한결 살 만한 공간이 될텐데…. 한때 우리 지역에 '밀양에 신공항이 들어와야 한다'는 현수막이 요란하게 걸렸던 적이 있었다. 그 밀양에 송전탑 건설문제로 그 지역의 할머니들이 자신이 살았던 땅을 지키고자 저렇게 처절하게 투쟁하는데, 왜 그 자리에 '복음의 기쁨'이 스며들어가지 못할까? 우리 사회의 진정한 자유와 통합은 사회주변이나 변두리, 잉여의 바닥을 끌어안는 것이다. 문제해결 이전에 공감해주고 들어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전자레인지처럼 뜨거운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밀양 할머니들이 큰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삶의 터전을 지키자는 것이다. 인도의 간디는 '만일 농촌마을이 망한다면 인도가 망할 것'이라고 늘 말했다. 농촌마을은 지속가능하기에 더더욱 잘 가꾸어야 한다.

이제 산자연학교를 뒤로 하고, 또다시 다른 일을 시작했다. 1년 전부터 준비한 (사)커뮤니티와 경제라는 단체의 이사장 자리다. 또 다른 새 출발이다. 신부로서는 남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기에, 또 다른 보람된 일에 힘을 쏟고 싶다. (사)'커뮤니티와 경제'는 정부지원을 받아 대구경북지역의 농촌이나 창업을 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새로운 아이템으로 시장에 뛰어들 수 있도록 북돋워주는 사회적 기업이다. 산자연학교에서 배운 많은 교훈과 추억을 담고, 이제는 공동체와 경제라는 큰 주제를 갖고 사회와 소통하며 새로운 주님 안의 일을 출발한다.

(사)'커뮤니티와 경제' 이사장 정홍규 신부 comomont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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