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북대병원 병원체자원거점은행의 역할

입력 2013-09-04 07:22:36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은행이 있다. 종자은행, 혈액은행, 조직은행, 안구은행 등과 같이 종자나 인체의 일부를 저장하였다가 필요한 경우 긴요하게 쓸 수 있게 내어주는 은행들도 있다.

2008년 보건복지부는 질병관리본부 산하에 경북대병원을 비롯하여 경상대병원과 전북대병원에 병원체자원은행을 설치하였다. 병원체자원은행의 설치 목적은 통상 폐기되고 있는 감염 환자로부터 분리한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를 값이 나가는 생물자원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왜 환자들에게 질병을 일으켰던 병원체를 자원이라는 이름으로 모으고 있을까?

그 이유는 세계 여러 나라들이 자기 나라의 자원에 대한 생물주권을 요구하는 세계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한때는 생물자원을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어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생물자원을 아무런 제약 없이 사용하여 새로운 약제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다국적기업이 동남아시아의 어떤 나라에서 얻은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백신을 개발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고, 또 그것을 그 나라에 다시 팔기까지 하면서도 그 나라와 전혀 이익을 나누지 않고 독식함으로써 자원을 제공한 나라와 마찰을 빚게 된 적도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로 인해 1992년 6월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는 기후변화협약과 함께 생물다양성협약이 채택되었는데, 이 생물다양성협약의 목적이 첫째는 생물다양성의 보전, 둘째는 생물다양성의 지속 가능한 이용, 셋째는 생물유전자원의 이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의 공평한 공유로 정하여졌다.

2007년 생물다양성협약 사무국은 전 세계적으로 세균을 포함한 생물유전자원의 가치를 6천900억달러(약 700조원)라고 보고한 바가 있는데, 생물자원의 가치는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협약은 마침내 2010년 10월 29일 일본 나고야에서 개최된 '제10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접근 및 이익공유'를 규정한 나고야 의정서를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당사국별로 비준이 진행되어 50번째 나라가 의정서를 제출하면 국제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우리 정부는 2014년 10월로 발효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때가 되면 생물유전자원(미생물도 포함됨)의 국가 간 이동이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로서는 비싼 돈을 들여 자원을 수입해야 하기에 더욱 불리한 환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런 대비의 하나로 병원체자원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병원체 연구의 중요성은 전 인류가 수년 전부터 이미 위협을 느껴왔던 사스(SARS), 조류인플루엔자, 진드기 바이러스 등 신종감염의 출현으로 인한 두려움뿐만이 아니라, 근래에 매스컴에서 자주 보도되는 "어떤 항생제에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다약제 내성세균), 소위 '슈퍼버그'가 출현하여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병원체로 인한 재앙의 예방이나 치료 차원의 연구가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으며, 이러한 연구에는 최근 환자로부터 분리한 병원체를 연구대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병원체자원은행에서는 국내 연구자나 기업들에게 국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병원체를 보관해 두었다가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12년 국가병원체자원은행연보'에 의하면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는 인체 유래 병원체자원의 수가 2012년을 기점으로 1만 주를 넘어섰다. 이들 자원의 상당수가 경북대병원을 비롯한 병원체자원은행에서 보관된 것이다. 대구경북에서 분리되는 병원체를 수집하는 지역거점은행으로서 경북대병원은 보다 우수한 품질의 체계적인 자원을 제공할 목적에서 ISO9001 품질경영시스템을 도입하여 모든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이렇게 수집된 자원을 산업계, 학계 및 관련 연구자들에게 무상으로 분양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기술개발 연구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연구자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경우에는 원하는 병원체를 수집하여 제공해주기까지 하는 '연구자 중심의 맞춤 병원체자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원길/경북대병원 병원체자원거점은행장·진단검사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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