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행복편지] 놀 줄도 알아야지!

입력 2013-07-16 07:49:44

수강생들과 어울려 지역의 문화유산을 찾았습니다. 지난 4월, 강좌를 연 '행복교실'의 연장시간입니다. 성인 중심의 강좌였지만 초'중학생들도 몇 명 눈을 반짝거리며 참가했던 터라 함께 소풍을 떠난 것입니다. 천년의 오랜 노목들이 빽빽한 숲 속에서 참여자들은 마냥 동심에 겨워했습니다. 숲 기운을 받는다면서 아름드리 나무들을 끌어안기도 하고 입맞춤도 나눕니다. 비 갠 끝이라 촉촉한 땅을 밟는 기분이 여간 상쾌하지 않았지요. 숲 길을 벗어나 영천의 '자천교회'를 방문합니다. 110년의 역사를 지닌 그 교회는 처마가 낮은 한옥입니다. 예배당이라 이름 붙여진 건물은 까만 기와로 이고 네 면이 모두 지붕을 이루는 우진각 구조입니다. 거기다가 망루처럼 높게 세운 대문간의 종각과 남녀의 위치를 갈라 앉게 한 예배석은 방문자들을 낯설게 해주었지요. 그리고 우리 일행은 300여 년 세월의 때가 묻은 고택과 정자를 연이어 방문하면서 옛것과 교감하는 행복한 나들이가 되었습니다. 고택 마루에 앉으니 소소한 바람결에 옛 사람들의 삶의 내음이 풍겨났습니다. 그 분위기에 한껏 젖으려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반가운 친구의 목소리였어요. 안부를 나누고 난 뒤, 수강생들과 문화재 답사 나왔다는 나의 이야기를 듣던 그는 전화를 놓으려다 말고 한마디 보탭니다.

"제발, 일 좀 그만하고 쉬거라. 놀 줄도 알아야지!"

전화를 할 때마다 그는 나를 마치 일 중독증에 빠진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함께 놀자는 주문과 내 몸에 이상신호를 걱정하는 우정 어린 원망도 섞여 있습니다.

타고난 성정과 외양이 훤칠하거니와 크고 작은 조직의 리더를 감당했던 그는 나와 다른 경험을 하면서 살아왔지요. 규격화된 학생들과 좁은 교단, 그리고 제한된 캠퍼스에서 평생을 보낸 나와 그는 놀고 쉬는 방법이 조금 다릅니다. 그는 지인들과 어울려 주거니 받거니 약주를 나누면서 좌중의 주목받기를 즐깁니다. 하급자와 동료들에게 시간도, 물질도 베풀기를 좋아하고 만족해합니다. 존경의 욕구가 좀 강하다 할까요. 그래서 늘 주변에 놀이 동무가 많습니다.

나는 놀고 쉬는 것과 일하는 것을 확연하게 구분하지 않습니다. 일 속에 쉼이 있고 쉼 가운데 또 다른 일이 발아한다는 생각을 하지요. 일상을 떠나 나를 풀어놓는 시간이면 모두 쉬고 노는 것으로 여깁니다. 놀이를 반드시 여러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 따로 없습니다. 스토리를 찾기 위해 복잡한 도심을 떠나 산과 물가를 걸으며 담긴 혼을 찾는 일이 나는 참 즐겁습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쉬는 시간이고 노는 일이 되어주니까요. 속을 텅 비우고도 살아서 움을 틔우는 고목, 비바람이 노닐다 간 자국 같은 구멍 난 고택의 기둥과 따뜻함이 밴 토담을 만나는 일, 모두 사람과 세월의 흔적이 묻어 밴 것들입니다. 자연과 옛것들, 그 속의 숨결을 듣는 일…. 그런 대상을 찾아 나서면 오히려 나의 육체를 쉬게 하고 영을 즐겁게 만듭니다. 나에게는 더없이 신나고 귀한 쉼의 시간이 되어줍니다. 나 혼자도 충분히 즐겁지만 동행자가 있으면 더더욱 좋지요. 그렇다고 선인들이 즐긴 독락(獨樂)의 기쁨을 흉내 내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누구나 쉰다는 것, 논다는 것의 궁극은 하나로 귀착될 것입니다. 일상과 일의 압박으로부터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고, 그것으로 하여금 다시 나아갈 새로운 힘을 얻으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나의 고우는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쉬고 노는 나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오늘처럼 뙤약볕 아래서 문화재를 탐방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그 자신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숫제 놀 줄 모른다고 타박을 주지요. 나의 일은 여전히 이야기의 근원이 묻힌 현장을 답사하고 그와 관련되는 사람을 만나고 그리고 컴퓨터 앞에서 작품을 완성시켜야 할 일정으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나로 하여금 우리 이웃들에게 미담과 행복 바이러스를 배내해 주고 싶은 소박한 내 생각을 실천하는 일은 무엇보다 즐거움을 더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일한다기보다 놀고 쉰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그래도 그 고우가 나를 불러 놀자 하는 날, 나는 그의 놀이법으로 선뜻 옮겨 앉아 더불어 즐길 것입니다. 조금 설긴 하겠지만 그의 방식을 인정해야지요. 틀린 것이 아니고 나와 다를 뿐이니까요.

김정식/담나누미 스토리텔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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