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날 우리 집 밥상은 오곡밥에 일곱 가지 나물과 부럼을 깨는 단단한 견과류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해는 몸을 쏘는 듯한 더위도 타지 말라며 그날 하루만은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 반찬은 아예 내놓지를 않았다. 아무리 전해져 내려오는 풍속이라지만 입에 맞지도 않은 갖가지의 나물, 거기에다 입안에서 겉도는 콩이 가득한 오곡밥을 먹기란 돌을 씹는 만큼이나 싫어했던 음식이었다. 왜, 이와 같은 풍속을 따라야 하는지를 반문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것을 지금 내가 준비하고 있으니….
달이 훤히 떠오를 때, 한 가지 소원을 빌면 꼭 들어준다는 말에 왜 그런 미신을 믿느냐고 갑론을박하며 열을 올렸었다. 지난날 그렇게 미신적인 것에 강한 부정을 보였던 나였지마는 그것을 뒤집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첫 아이가 태어나 며칠 되지 않았을 무렵, 잠만 자던 갓난애가 오후부터 무언가에 놀란 듯 울음을 그치지 않는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몰라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를 불렀더니 아이의 우는 모습이 좀 이상하다며 남편이 어딜 갔느냐고 물었다. 멀리 문상을 갔다고 했더니 갓 태어난 아기를 두고 흉한 곳에 갔다며 나무랐다. 그러더니 어딘가(?)에 가자며 재촉하는 것이다. 반나절을 목이 쉬도록 우는 애를 다시는 두고 볼 수 없었던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쭈뼛쭈뼛 따라나서고 말았다.
'새벽 호랑이가 중이나 개를 헤아리지 않는다'고 다급해지니 앞뒤 가릴 겨를도 없이 아이를 둘러업고 뛸 수밖에 없었다. 생전 그런 곳은 쳐다보지도 않던 내가 무지함이니 뭐니 자식 앞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등에 업은 아이를 보더니 "누가 초상집에 갔네"하며 꾸짖었다. 그리고는 '양밥'(표준어로는 양법'禳法)을 해야 풀어진다는 것이다.
사람 마음은 참으로 간사한 것인가. 내가 미신에 수긍의 뜻을 나타낼 줄이야. 밤늦게 집에 온 남편은 무식하게 주술을 믿는다며 화를 냈다. 하지만 부모인지라 답답한 마음에 일러준 대로 행할 수밖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아이는 거짓말처럼 멀쩡해졌다. 아무튼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지금까지도 내겐 긴가민가하다.
그런 까닭에 지금도 가끔, 문상 갈 일이 생기면 소량의 소금을 주머니에 넣어주는 버릇이 생겨났다. 소금이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양밥이라 생각하여 답습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면 거부감을 찾을 수가 없다. 터무니없는 미신이라고 콧방귀를 뀌겠지만, 선대의 선남선녀들은 주술을 믿었다. 그렇다고 믿으라는 뜻은 아니다. 어찌 되었든 시대의 변천에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지켜지는 것은 '좋은 게 좋다'는 어떤 믿음의 풍습이 아닐까?
윤경희 시조시인 ykh646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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