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최인호의 단편소설 '타인의 방'은 1970년대 산업화에 따른 현대인의 소외감과 고립감을 초현실주의적 기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자신의 방에서조차도 고독과 불안에 휩싸이는 한 남성의 내면을 그리고 있다.
한국인에게 방(房)의 개념은 아주 특별하다. 방이야말로 주택의 기본적인 요소로 위치나 용도 및 기능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졌기 때문이다. 주거 생활의 중심이 되는 안방과 가장의 거처이며 손님을 접대하는 사랑방을 비롯해 건넌방'아랫방'윗방'뒷방'샛방'문간방'행랑방 등이 있었다. 이 밖에도 작은 규모의 골방과 토방, 잔치 때 음식을 준비하고 차리는 과방, 창고나 광처럼 쓰이는 헛방도 있었다.
원시시대로 갈수록 하나의 방으로 이루어진 단일 공간에서 거실'침실'부엌'식당'저장의 기능이 모두 이루어졌다. 그러나 건축 기술의 진화에 따라 점차 각 방들의 기능이 분화되면서 방의 연결과 조합에 따라 주택과 건물의 성격이 결정된 것이다.
온돌 문화인 우리에게는 주택 이외에도 방이란 이름을 지닌 공간이 무수히 많다. 살림을 넣어두는 고방, 부녀자가 거처하는 규방, 죄수를 가두어 두는 감방, 주막에서 여러 나그네가 묵던 봉놋방 등이 있다.
다방과 책방, 한약방, 복덕방은 지금도 귀에 익은 방들이다. 게다가 혼자 쓰면 독방이요, 신혼부부를 위해 새로 차린 방은 신방(新房)이 된다. 혼인한 신랑 신부가 첫날밤에 자는 방은 화촉동방(華燭洞房)이지만, 여자가 남편 없이 혼자 지내는 방은 독수공방(獨守空房)이다.
고려시대 무신정권 때는 국정을 관장하는 최고기관에 줄줄이 방의 이름이 붙기도 했다. 중방, 도방, 정방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방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의 권력 유지를 위한 비밀스런 성격을 지닌다.
자고로 방(房)이란 장소와 역할에 따라 무언가 내밀한 뉘앙스를 지닐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지나치게 타락하니 문제인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를 먹칠하는 방들이 그것이다. 일부 노래방의 변태 영업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다 대도시 지역에 키스방, 안마방, 유리방, 인형방, 포옹방 등 사실상 변종 성매매업소들이 방의 이름을 걸고 성업 중이라니 가관이다.
하긴 천지사방에 난립한 모텔 또한 따지고 보면 공공연한 '불륜방'이 아니고 무엇인가. 떳떳하지 못한 방이 난립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병들었다는 신호이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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