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책] 앙시엥 레짐

입력 2011-05-11 07:41:39

앙시엥 레짐(Ancien Regime'프랑스 대혁명 이전 옛 제도)의 불평등 타파를 부르짖은 프랑스 대혁명의 주체는 오래 굶주린 파리 시민들이었다. 일련의 성공을 거둔 가공할 이 혁명은 유럽과 세계 역사에서 정치권력이 소수 왕족과 귀족에서 일반 시민에게 옮겨지는 시민사회로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로부터 약 180년 후인 1968년 5월, 2차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대학생들이 '금지하는 모든 것을 금지하라'란 기치로 20세기 앙시엥 레짐을 거부하며 다시 거리로 뛰쳐나왔다. 68혁명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이듬해 드골정권의 재집권 실패, 대학의 국유화로 이어졌다. 이후 대학은 좀 멋없이 1, 2, 3, 4대학 등으로 번호가 매겨지고, 현재 한 해 등록금으로 우리 돈 27만원 남짓 내는 소위 '사르트르 세대'가 탄생되었다.

지난 파리 여행에서 그 68혁명의 촉발지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은행에 들렀었다. 물론 런던행을 위한 환전 때문이었지만, 대혁명의 촉발지 바스티유 광장에서 느낀 것과는 좀 다른 서늘함에 잠시 몸을 떨었다. 아마도 대혁명보다 1968년에 좀 더 가까운 생물학적 나이와 역사적 현장에 있다는 감격 때문이었겠지만, 어쨌든 68혁명은 베트남전 반전(反戰), 마오이즘, 히피철학 등을 뉴욕과 도쿄를 비롯한 전 세계 청년들에게 급속도로 파급시켰다.

1968년 5월, 갓 이십대에 접어든 우리 동네 오빠들은 멀쩡한 청바지 무릎을 시멘트 바닥에 문질러 너덜너덜 해지게 만들어 입고 기타를 메고 다녔다. 장발에 영어가 씌어진 티셔츠, 해진 부츠 컷 청바지와 커다란 버클이 달린 벨트는 당시 그들의 핫 트랜드 아이템이었다. 또 '판탈롱' 스타일은 언니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대유행이어서 소매와 허릿단을 돈키호테의 전투복처럼 퍼지게 만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었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집집마다 '요즘 아이들은 왜…'란 투의 어른들 푸념과 잡기(雜技)에 매몰되어가는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기타 부수기, 야구 방망이 부러트리기, 글러브 찢어 버리기가 악순환되었다. 아아, 하지만 어른들이야 뭐라 건 월남으로 군인 간 외삼촌이 보내 온 야전전축에 해적 LP판을 걸고 오빠들은 숨어서 C.C.R의 'Proud Mary'나 밥 딜런을 들어댔다.(물론 십여 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 제목들을 알게 된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그들이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1세대 청년들이었고, 물질문명의 세례를 처음으로 받기 시작했으며, 구(舊) 체제의 정신적 억압을 비로소 느낀 이들이 아니었나 싶다. 아아! 5월이다.

박미영(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