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예산도 우여곡절 끝에 통과되었다. 해마다 예산을 놓고 벌여온 국회에서의 싸움이 또 한 차례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매년 나라 살림을 놓고 벌어지는 이 싸움을 그저 연례 행사 정도로 넘기기에는 우리 나라 살림의 중요성이 너무나도 커졌다. 두 번의 큰 경제 위기를 재정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재정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고 머지않아 숙명적으로 맞이하게 될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재정의 역할이 더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매년 반복되는 나라 살림 결정과정에서의 파행을 더 이상은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예산안 통과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 그나마 의미가 있으려면 국회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예산을 심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회에 앞으로도 나라 살림을 맡기려면 우선 반성문을 쓰도록 해야 한다.
그 반성문에는 세 가지 약속이 반드시 담겨야 할 것이다. 첫째는 전년 대비 증가율에 집착하지 말고 예산사업 하나하나를 놓고 심의하겠다는 약속이다. 숫자가 아닌 내용, 다시 말해서 겉으로 보이는 포장이 아닌 속 내용물을 갖고 꼼꼼히 따져 보자는 것이다. 2011년 예산은 309.1조원으로 전년대비 5.5% 증가했다. 그 중 복지 예산은 86.4조원으로 전년대비 6.3% 증가했다. 그리고 복지예산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로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년대비 증가율과 부문별 예산의 비중과 같은 숫자들이 의미를 가지려면 기존 예산의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내용들이 최소한의 성과가 있어야 한다. 기존 예산 사업들이 잘못 만들어지고 잘못 집행되고 있었다면 이를 기초로 한 증가율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장률에 비해 예산 증가율이 높다 낮다는 공방이나 복지예산의 증가율이 전체 예산의 증가율에 비해 높다는 자랑은 기존 예산사업이 잘못 시작되었으면 그저 허무할 따름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거시적 예산심의가 아니라 미시적 예산심의에 충실해야 한다.
둘째 약속은 1년 내내 심의하겠다는 것이다. 예산은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로 하여금 예산편성 지침을 보내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5년 단위 국가재정계획의 수립은 부문별 국가재정계획 관련 세미나를 하면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부터 국회에서의 예산심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국회에서 예결위가 상임위화는 안 되었다 하더라도 상설화가 되어 있기에 국회는 정부가 다음해 예산을 짜기 시작하는 처음 단계부터 함께해야 한다. 특히 이른바 총액배분자율편성제도(top-down system) 하에서 각 부처별 예산의 총액(ceiling)이 결정되는 과정에 국회의 예결위와 상임위가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국가재정계획을 기초로 매년 예산을 짤 수 있도록, 국가재정계획 수립에도 참여해야 한다. 지금은 정부가 예산안 제출 시 국가재정계획을 함께 제출하기에 국회는 국가재정계획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셋째는 나라 살림에 대한 고민을 민간과도 함께하겠다는 약속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예산에 관한 한 민간 연구기관들의 역할이 지대하다. 특히 각종 예산사업에 대한 과학적인 사전사후평가를 실시하는 민간연구기관이 상당수 있고 그 결과는 의회에서의 예산심의에 적극 반영된다. 그런데 우리의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예산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산에 관한 한 정부와 국회, 그들만의 문제로 되어 있는 것이다. 만일 민간 연구기관의 객관적이고도 과학적인 연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우선 중소기업, 농업, 복지 등 정부에서건 국회에서건 함부로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는 분야부터 비용효과성(cost-effectiveness)을 평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들 분야에 지금까지 투입된 엄청난 규모의 예산이 과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는지에 대한 평가야말로 우리 나라 살림을 제대로 정비하는 데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과업이다.
반성문에 담길 이 3가지 약속을 지켜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라 살림이야말로 늘 더 많이 쓰겠다는 포퓰리즘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포퓰리즘의 유혹에서 벗어나서 반성문을 쓰고 또 반성문에 쓰인 약속을 우리 국회가 지켜가도록 하려면 국민의 인내 과정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국민들이 포퓰리즘을 가려내는 혜안을 가지는 데 있어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언론매체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다.
안종범(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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