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에 연탄 나른 대구FC 감독·선수들

입력 2010-12-25 07:03:37

"사랑의 연탄 땀방울 모아 새해엔 더 많이 이길게요"

21일 대구FC 선수단이 대구 서구 원대동 쪽방촌에 연탄을 배달하며 시민들에게 다가갔다. 대구FC는 연탄이 따뜻함을 전해주듯 내년에는 그라운드에서 더 많은 승리를 거둬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21일 대구FC 선수단이 대구 서구 원대동 쪽방촌에 연탄을 배달하며 시민들에게 다가갔다. 대구FC는 연탄이 따뜻함을 전해주듯 내년에는 그라운드에서 더 많은 승리를 거둬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모두 각오 단단히 하라고. 한 장이라고 깨뜨리면 안 돼."

21일 오후 대구 서구 원대동의 쪽방촌. 프로축구 대구FC 이영진 감독의 지시에 따라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앞치마에 장갑을 낀 선수들의 임무는 대로변에 쌓아놓은 연탄 1천 장을 쪽방촌 2층 연탄창고까지 옮기는 것. 쪽방촌 입구가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좁아 직접 손으로 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0여 명의 선수들이 1m 간격으로 줄을 서니 금세 인간 띠가 만들어졌다.

"운동선수들답게 한 번에 다 옮겨보자고."

힘찬 기합과 함께 첫 연탄이 손에서 손으로 건네졌다. 마치 파도타기를 하듯 리듬감 있게 전해지던 연탄은 100개를 채우지 못하고 끊겼다. "쉬었다 합시다." 요령 없이 힘으로만 전달하려다 보니 숨소리가 금방 거세졌다. 연탄 창고로 향하던 배달은 자주 끊겼다. "이거 쉽지 않은데요. 어휴 힘들어." 선수들의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자 힘을 내자고. 이 연탄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겨울을 나게 할 유일한 난방수단이야. 너희는 버튼만 돌리면 방안에 온기가 차고, 수도꼭지만 누르면 언제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집에서 사니 아마도 연탄의 소중함을 모를 거야." 이 감독은 옛 추억을 들려주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저도 어릴 때 여유 있게 살지 않았어요. 그 시절 연탄은 없어서는 안 될 생필품이었죠. 저에겐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쪽방에 사는 사람들에겐 올 겨울을 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보물이겠죠." 이 감독은 "오로지 최고가 되기 위해 운동에만 전념해온 선수들이 직접 연탄을 나르며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며 흐뭇해했다.

"선수들이 경쟁을 하면서도 동료를 살펴보고, 또 사회를 향한 따뜻한 마음을 지닐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시민구단에서 뛰는 선수들이라면 당연히 갖춰야할 덕목이죠."

이날 배달한 연탄은 선수들이 시즌 중 받은 승리 수당과 평소 연습 시간에 늦었을 때 내는 벌금을 모은 돈으로 마련했다. 모두 6천 장.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대구·경북지부 직원들이 배달이 어려운 두 곳을 주선했고, 선수들은 휴가를 반납하고 연탄 배달에 나섰다. 한 팀은 쪽방촌, 다른 한 팀은 화물차나 리어카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길 모퉁이 집에 연탄을 채웠다.

연탄이 배달된 곳은 한겨울 냉기가 가득한 방안에서 추위에 떨며 혹독한 겨울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유일한 난방수단이 연탄이지만 이마저도 없는 살림에 맘껏 때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 내몰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쪽방촌의 한 할머니는 "연탄이라도 있으면 겨울나기가 수월치만 비어가는 창고를 보면, 불구멍을 닫아야 한다"며 "축구선수들 덕분에 올 겨울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3.6kg 무게의 연탄은 쉴 새 없이 손을 거쳐 쌓여갔다. 미처 호흡이 맞지 않아 몇 개는 바닥에 떨어졌다. 그때는 탄식이 쏟아졌다. 간혹 길 가던 시민들이 선수들을 알아보고 "파이팅"을 외쳤다. 그때면 선수들은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텅 비었던 연탄창고는 1시간30분 만에 가득 찼다.

"연탄이 가득 차니 기분 정말 좋습니다. 부자가 된 것 같아요."

연탄 창고를 지킨 대구FC 주장 방대종 선수는 "간격을 너무 좁게 해 연탄끼리 부딪쳐 으깨질 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배달은 마친 선수들은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한낮의 수고로움이 준 뿌듯함을 만끽했다. 온병훈 선수는 "우리가 나른 연탄이 한겨울 불꽃을 활활 태워 따뜻한 온기를 전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쪽방촌을 운영하는 주인 할머니는 이영진 감독과 선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참 딱하게 사는 사람들이에요. 월세 10만원을 못 내는 형편이니. 몇 달 동안 돈을 받지 못하니 춥다고 빚을 내 연탄을 때줄 수도 없는데, 이렇게 창고를 가득 채워주니 올 겨울은 시름이라도 잊으라고 뜨끈하게 연탄을 때줘야겠어요."

대구FC도 올 겨울을 냉기와 싸우고 있다. 2003년 대구시민구단으로 출범했지만 부진을 거듭하면서 정작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급기야 올 시즌엔 화난 팬들이 '단장 퇴진 운동'을 벌였고 이달 초에는 내년도 지원예산이 대구시의회 상임위에서 전액 삭감됐다 예산결산특별위 계수조정소위원회에서 극적으로 회생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대기업의 홍보수단으로 운영되는 구단과 달리 대구FC는 시민구단이라 재정이 약하고 스타급 선수들도 거의 없다. 이근호, 하대성, 오장은 등 한 해에 1, 2명 정도 스타급 선수들을 배출해 왔지만 돈 많은 구단들에 팔아 자금을 확보해야 했다. 연고지 내에 든든한 후원 기업을 물색하기 어려워 시민 구단 중에서도 살림살이가 가장 빠듯한 형편이다. 더욱이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문에 대구스타디움을 사용하지 못하면서 스폰서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대구FC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프런트 등 선수단은 이날 연탄을 나르면서 마음속으로 내년 시즌 각오를 다졌다. 선수들과 함께 연탄을 나른 대구FC 박종선 대표이사는 "내년에는 더 많은 승리를 거둬 대구시민들의 자랑이 될 수 있도록 이번 겨울을 알차게 준비하겠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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