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발 北風, 대구 붕어빵·군고구마 경기에 직격탄?

입력 2010-12-25 07:50:39

서민 간식마저 얼어붙은 2010 세밑 풍경

2대째 동대구 고속버스 터미널 앞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박계선 씨가 추위도 녹이고, 배를 채우러 온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2대째 동대구 고속버스 터미널 앞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박계선 씨가 추위도 녹이고, 배를 채우러 온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동대구역에서 30년째 군밤을 팔고 있는 김 아무개 씨. 육교 가로등 아래에서 연탄불을 피워놓고 군밤을 굽는 모습이 시간을 돌려놓은 듯하다.
동대구역에서 30년째 군밤을 팔고 있는 김 아무개 씨. 육교 가로등 아래에서 연탄불을 피워놓고 군밤을 굽는 모습이 시간을 돌려놓은 듯하다.
중앙로 국민은행 본점 아래 골목에서 추억의 국화빵을 팔고 있는 석용규·김환광 씨.
중앙로 국민은행 본점 아래 골목에서 추억의 국화빵을 팔고 있는 석용규·김환광 씨.

"북한의 도발이 겨울 길거리 장사에도 삭풍 불게 해"

겨울 길거리 풍경 취재를 나섰다 예상치도 못한 사실을 접했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 천안함 폭침 사건 등이 풀빵·붕어빵·군밤·군고구마·어묵·떡볶이 등 겨울 길거리 먹을거리 매상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었다. 얼어붙은 서민들의 마음이 몇천원 안 되는 돈의 지출까지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했다. 마치 나비효과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되는 대한민국의 긴장 상황이 증권시장뿐 아니라 포장마차 간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동성로에서 국화빵을 팔고 있는 부부의 얘기를 되새겨볼 만하다. "날씨가 추워지면 매상이 더 올라가는데, 북풍(북한의 도발)이 불면 매상이 떨어집니다."

그랬다. 겨울 길거리 풍경은 먹을거리를 파는 상인들이나 사 먹는 사람들이나 다 서민이다. 우리들의 살풍경인 셈이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인 이명박 대통령도, 굴지의 글로벌 대기업 이건희 삼성 회장도 어묵 하나만 들면 서민적인 이미지를 덧씌울 수 있다. 겨울 마법과 같은 길거리 음식을 길바닥에 살갑게 펼치고 있는 30년 군밤장수, 포장마차 모녀, 국화빵 부부를 통해 2010 세밑 풍경을 그려봤다.

◆30년 군밤장수 김 아무개

"사진은 찍어도 되는데 성만 적고 이름은 아무개로 부탁합니다."겨울 길거리 풍경인 만큼 주머니에 세종대왕이 그려진 지폐 1장을 넣고 취재에 나섰다. 머리를 썼다. 기자라고 하면 부담을 느낄테니, 대뜸 "군밤 2천원어치만 주세요." 상인들에게 매상을 올려주는 일보다 더 반가운 일이 있을까? 이미 마음은 열렸다. "선생님, 여기서 군밤 판 지 얼마나 되셨죠?""벌써 30년 됐어."

얘기를 술술 풀었다. 올해 68세인 김 아무개 씨는 동대구역 서편 육교 위에서 30년째 군밤을 팔고 있었다. 청춘을 군밤에 바친 셈이다. 군밤 팔아서 1남3녀를 잘 키웠다는 얘기를 할 때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얼굴 표정은'나 이런 사람이야!'였다. "대단하십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하루 매상은 얼마나?"라고 묻자, "아이고!(한숨) 평일에는 5만~6만원, 주말에는 조금 더 벌지. 예전에는 정말 먹고살 만했는데 지금은 담뱃값과 술값이나 조금 벌지"라고 답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KTX가 생기면서 매상이 더 떨어졌어요. 빠르게 바쁘게만 살다 보니 군밤장수를 돌아볼 겨를도 없겠지요."

김 씨의 근무시간은 정오(낮 12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날씨가 추울 때면 힘은 2배로 들지만 매상이 2배로 오르니 견딜 만하다. 하지만 칠순의 가까운 나이에 육교 위의 물건들을 아래 리어카까지 옮기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도 30년을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 능수능란하다. 어려움은 또 있다. 노점상이다 보니 한번씩 단속을 나오면 "에구~, 에구~"할 말이 없다. 예전에는 단속에 여러 차례 걸려 벌금 2만, 3만원을 자주 냈다.

◆2대째 50년 포장마차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 앞으로 옮겼다. 길거리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포장마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비닐 천 안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다. 매섭도록 춥고 찬바람이 부는 날에는 포장마차에서 나는 김처럼 반가운 것이 있을까? 포장마차 처마 끝에는 부산어묵·꼬치·쥐포·오징어·찰옥수수·납작 만두·잎새 만두·쌀떡볶이·붕어빵 등 메뉴 현수막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서자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곳에서만 2대째 50년에 걸쳐 장사를 해오고 있다는 것. 어머니로부터 17년 전 포장마차를 물려받아 주인자리를 꿰찬 박계선(54) 씨는 벌써 가업을 물려줄 준비하는지는 몰라도 시집간 딸(29)과 함께 있었다. 버스터미널이 생기기 전부터 포장마차를 해 온 86세 어머니도 아직 정정하시단다.

일하는 시간은 제법 길다. 낮 12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1시30분까지 무려 13시간이나 된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지만 이 포장마차는 50년째 한 가정을 먹여살리고 있다. 물론 동대구 버스터미널을 오가는 이들의 출출한 배도 채워주는 효자 역할도 하고 있다.

목이 좋은 자리인 만큼 괴로움도 크다. 만취자의 행패, 무전취식자의 횡포, 노숙자의 배고픔으로 인한 어묵 절취 등은 50년 포장마차 주인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수시로 뜨는 단속반이 오후 6시 넘어 나올 때도 있다고 한다. 박 씨는 "한 번씩 그런 일도 있으니 그러려니 한다"고 털어놨다. 딸도 한몫 보탰다. 어머니를 돕기 위해 나왔는데 한번은 손님에게 10만원짜리 수표를 받지 않고, 거스름돈만 8만여원을 줘서 그날 매상을 통째로 날려버린 눈물겨운 에피소드였다.

◆추억의 국화빵 파는 노점상

"국화빵이 다른 데보다 크고 맛도 좋고 먹기에도 좋아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중구 안에서 아니 대구에서 이런 국화빵은 없을 겁니다."

주인 석용규·김환광(56) 씨는 20년째 노점상을 해 오던 노하우를 갖고 2년 전부터 중앙로 국민은행 본점 아래 골목에서 추억의 국화빵을 굽고 있다. 장사가 잘된다. 혼자서 10~15개를 먹고가는 국화빵 마니아들도 생겨날 정도다.

자신만의 국화빵을 만들기 위해 많은 연구를 거듭했음을 강조했다. 석 씨는 "노점상을 오래하다 보니 여름철 계절과일 주스 등 안 해본 일이 없지만 이번 국화빵은 제대로 맛을 내고, 중앙로 명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국화빵은 대구시내 직장인의 아침 및 오후 간식거리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번 맛 본 이들은 사무실 단위로 1만~2만원어치씩 한꺼번에 사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문을 열기 시작하는 오전 10시부터 10시30분 사이와 오후 점심시간 이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1주일 중에서는 월·화요일이 더 손님이 많다.

이 국화빵 노점은 다른 노점들과 달리 중구청에 세금을 내고 있다. 도로점유세와 가판대 임대료를 합쳐서 연 70만원에 달하는 돈을 낸다. 그래서 더 많이 팔아야 하고, 더 열심히 국화빵을 구워야 한다.

이들은 이런 푸념을 했다. "북한의 도발로 매상이 많이 줄었습니다. 희한하죠. 서해 5도의 포격이 대구 중앙로에 후폭풍이 미치니…."

재밌는 일도 가끔 생긴다. 술 취한 이들이나 해괴한 사람들이 가끔 국화빵을 돈을 안 내고 훔쳐먹는 일도 생기는데 너무 빨리 먹으려다 입천장을 데기도 한다는 것. 한마디로 '죄 짓는 자 스스로 벌을 받으리다.'

올해 겨울도 대구 길거리 풍경에는 이렇듯 살갑고 쓸쓸한 아이러니가 계속 되고 있다. '이방인'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말한 부조리(不條理)처럼….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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