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구 태전동 태전교 근처의 한 자전거점.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많은 자전거들 사이로 무서운(?) 인상의 노인이 담배를 물고 자전거를 고치고 있었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손놀림이 빠르고 꼼꼼하다. 자전거 수리와 함께한 세월 50년인 정호출(67) 씨다. 정 씨는 이 동네에서는 자전거수리의 박사로 통한다.
그가 자전거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집안 형편 때문이었다. 중학교에 합격을 했지만 입학금을 낼 돈이 없어 그 길로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는 자전거 가게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때는 기술을 가르쳐 준답시고 월급도 없었고 심지어 밥도 안줬어. 석 달이 지나니까 밥은 주더라. 그리고 기껏해야 명절에 양말 두 켤레 주는 것이 고작이었지." 그렇게 일을 배워 대구 북성로 근처에서 에어펌프 한 대와 몽키스패너 한 자루로 독립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무렵 자전거 유동인구가 많은 변두리를 찾아 지금의 가게로 들어왔다.
"큰 애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이 곳에 왔으니까 태전동에서 자전거점을 운영한지 어림잡아 35년 가까이 된다." 당시만 해도 자전거는 각 가정마다 최고의 교통수단이었던 만큼 그의 가게를 거쳐 간 지역민들의 숫자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심지어 당시 구암동 주민들은 정씨 가게 앞을 지나지 않고는 집에 갈 수 없다는 말이 생기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의 가게 앞은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칠곡 신도시 개발과 도로의 확장은 자전거를 거리에서 밀려나게 만들었다. 자전거보다 편리한 교통수단과 중국산 자전거의 증가로 이제는 근근이 생활비 정도만의 수입을 올리는 데 그치고 있다. 자전거를 수리해서 타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자전거 판매점의 다양화로 여건이 더욱 어렵다. 요즘은 10년 된 소중한 애마(자전거)를 닦는 날이 더 많아졌지만 단골들을 위해 평일에는 가게 문을 닫는 일이 없다. "자전거 수리 기술을 배우면 밥은 먹을 수 있겠다하는 생각으로 오로지 한 길 만을 걸어왔기에 내겐 자전거만큼 고마운 존재도 없지."
글·사진 정용백 시민기자 dragon102j@korea.com
멘토: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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