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에 계신 몇몇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 끝에 체벌 금지 문제가 화제가 됐다.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인 한 분은 언론에서 '교습권'을 좀 부각시켜 주면 좋겠다고 했다. 체벌 금지 문제가 핫 이슈로 떠오르면서 학생을 지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운동선수보다 더 성적이 나쁜 학생에게 얼차려를 준 것이 언론에 보도되고 인터넷에 뜨면서 곤욕을 치렀다고 했다. 회의 시간에 아예 학생 몸에 손댈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체벌 금지 원칙에 대해서는 교장 선생님도 공감했다. 다만 당장 대안이 없다는 데 답답해했다.
사실 대안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체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리 없다. 확실한 대안이 없으니 체벌이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한 번도 진지하게 체벌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 찾기 노력을 해 본 적이 없다. 체벌이라는 가장 손쉬운 방편이 있는데 대안을 찾으려고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그동안 우리 아이들에게 많은 잘못을 한 셈이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대안을 내놓았을 때만 제도나 규정을 바꿀 수 있다면 체벌 문제는 영원히 해결하기 힘들다. 이미 체벌을 금지하고 있는 선진국에서도 확실한 대안이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체벌 금지라는 절대 명제를 전제한 뒤, 드러나는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요즘 언론이나 인터넷을 보면 교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많이 부각된다.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것은 물론, 성희롱을 하거나 수업 중에 교사 몰래 단체로 춤을 추는 동영상까지 떠돌고 있다. 체벌 금지 문제가 이슈가 된 이후 부쩍 이러한 뉴스가 많은 것은 분명히 심각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는 무슨 일이든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일상화된 아이들이 벌이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리고 이들의 숫자도 극소수다. 한때 잦은 문제가 됐던 과잉 체벌 교사가 극소수인 것과 같다. 몇몇이 벌이는 문제를 전체 학생의 문제인 것처럼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를 체벌 금지에 따라 일어나는 교단 붕괴의 단면이라고 견강부회하는 것은 더욱 옳지 않다.
한걸음 물러나서 본다면, 아이들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 아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체벌의 공포에 시달렸는가를 잘 보여주는 역설적인 모습이다. 갑자기 찾아온 공포에서의 해방이 야유나 비아냥거림, 혹은 격렬한 반항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나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 요즘 아이들을 재단하려는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체벌 금지가 당위성을 갖는 것은 체벌이 곧 폭력이기 때문이다. 교사의 체벌을 부모의 체벌과 같이 '사랑의 매'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원천적인 속성이 폭력임은 변함없다. 그것도 대항할 수 없는 상대에 대해 일방적으로 가하는 폭력의 가장 나쁜 유형이다. 백번 양보해 폭력의 방법으로 빗나간 학생을 교화한 사례가 수없이 많다 해도 폭력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사소하지만 일방적인 폭력이 개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사례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뜨거운 감자를 입속에 덥석 넣거나 얼음물을 끼얹어 식히는 사람은 없다. 맛이 전혀 없게 되거나 입속을 몽땅 데어야 하는 대가가 따르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식을 때까지 기다리자니 참을 수 없는 배고픔이 문제다. 분명한 것은 입안에 화상을 입거나 배고픔이라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감자를 먹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체벌 문제도 이와 같다. 그냥 두려니 비인간적이고, 없애려니 온갖 부작용만 드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기다림을 참지 못한다면 배고픔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지금은 체벌 금지에 대한 가부를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그 이후에 드러나는 문제점 해결에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鄭知和(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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