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2만 달러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입력 2010-12-20 09:47:34

국민소득이란 개념에 문제가 많다고 한다. 국가의 경제 현상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혀 소용없는 것도 아니다. 국민소득 3천 달러인 나라보다 3만 달러인 나라가 확실히 경제적으로 풍요롭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왜 국민소득 타령인가? 며칠 전 한국의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회복했다는 뉴스를 보았기 때문이다. 2007년에 한순간 올랐다가 3년 동안 내려와 있었던 2만 달러 고지를 각고의 노력 끝에 다시 올랐다는 것이다.

성적이 내려갔다가 다시 올랐다니, 기분이 나쁠 리 없다. 그래서 상식 수준에서 '2만 달러'의 의미를 곱씹어 보기로 했다. 먼저 한국 돈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현재 1달러는 한국 돈 1천155원이다. 2만 달러는 따라서 2천310만 원이다. 부부와 자녀 둘인 4인 가족을 평균치로 치면, 한 가구당 1년 소득은 9천240만 원이다. 소득 분배의 이상적인 상태는 9천200만 원을 중심으로 하여 대부분의 가구가 좌우로 분포하는 것일 터이다. 하지만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너나없이 다 아는 바이다.

비정규직을 예로 들어보자. 현재 비정규직의 월평균 소득은 120만 원 정도라 한다. 1년이면 1천440만 원이다. 부부가 맞벌이를 한다 해도 2천880만 원이다. 이 부부와 아이 둘로 이루어지는 가구의 1년 소득은 9천200만 원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비정규직은 2010년 3월을 기준으로 828만 명이다. 그 가족은 몇 갑절이나 될 것이다. 경제에 식견이 없는 사람의 주먹구구지만, 간단하게 비정규직 수만 들어도 '국민소득 2만 달러'는 실제 국민 대다수의 삶과는 무관한, 그리고 사기성이 농후한, 허황한 소리인 것을 직감할 것이다.

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국민소득이 늘어나면 팍팍한 생활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선전하지만,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2만 달러 시대가 되었건만 비정규직의 수는 여전하고, 청년실업 문제도 개선된 바 전혀 없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혹은 국민총생산이란 말은 '국민'의 노동을 전제한 것이다. 한데, 국민 전체가 노동한 대가는 도대체 누가 가져갔단 말인가? 아마도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되건, 4만 달러가 되건, 비정규직은 여전히 넘쳐나고 청년 실업은 계속될 것이다. 국민소득이 불공정하게 분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의 분배는 이렇게 불공정하지만, 세금은 야차같이 닦달해 훑어간다. 하지만 정작 국가는 국민에게 해주는 것이 별로 없다. 모조리 개인에게 떠맡긴다. 예컨대 교육비를 들어보자.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교육비가 보통 국민의 가계를 짓누른다는 것은, 어김없는 진실이다. 한데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얼마 전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예산을 날치기 통과시킬 때 이런저런 골치 아픈 법안도 덤으로 쓸어 넣었는데, 거기에는 서울대 법인화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울대학교 법인화를 시작으로 이 정부는 지방의 국립대학도 법인화하려 할 것이다. 국립대학 법인화는 국립대학 등록금의 인상을 초래할 것이다. 이것은 사립대학보다 훨씬 낮은 등록금으로 다닐 수 있는 괜찮은 대학이 모조리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형편이 어려운 국민의 교육비 부담이 늘어날 것은 불문가지다.

이 나라의 치자(治者)들은 공정한 분배와 복지를 포퓰리즘으로 맹공한다. 국민소득 2만 달러의 대부분은 아마도 평소 돈 걱정 따위는 하지 않으시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계시는 그분들의 몫일 것이다. 대통령의 '공정사회'는 공정한 소득분배와는 상관없는, 그냥 듣기 좋은 꽃노래일 뿐이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한강의 인공섬을 만드는 데, 4대강을 파는 데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이나, 농민, 소상공인, 아르바이트에 목을 매는 대학생은 자기 가족이나 자식이 아니니까 별반 신경을 쓰지 않으실 것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들먹이는 사람들은, 3만 달러가 되면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3만 달러가 되어도, 4만 달러가 되어도 당신들에게 돌아갈 몫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것이다. 2만 달러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강명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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