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어처구니와 터무니

입력 2010-12-17 10:44:12

한 해가 또 간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만, 한 해를 보내는 것은 언제나 아쉽다. 미련이 남거나, 애살이 넘쳐 그런 게 아니라, 새해를 맞는 준비가 부족할 것 같은 두려움이다. 시험 공부를 하지 않고 시험을 치르려 교실에 드는 학생 같은 기분이다.

올 한 해의 문화판을 되돌아보면 지나쳐간 촬영을 마친 영화 세트처럼 어렴풋이 살아나지만, 혹시 외화내빈은 아니었는지, 구호에만 그치지는 않았는지, 도록으로만 보여지는 찬란함은 아니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세모의 계절에 지역 공연장은 이른바 파시(波市)처럼 붐빈다. 그야말로 성업중이지만, 공연예술도시의 문화적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최후의 일각까지 긴장해야 한다.

지나쳐간 한 해, 명불허전의 토종 문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모두들 아쉽고, 안타깝고, 애마르다. 혹한에도 지역 역사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M프로듀서, 향토음식디미방을 다시 쓰는 L기자, 지역문화행정의 정도를 가는 문화독립군 J과장, 문화의 귀거래사를 엮는 P위원장, 기업의 사회환원을 문화잡지로 실현해보이는 E편집주간, 중국에서 자신의 연출 기량을 펼치기로 한 연출가 L, 향토문학 현장을 찾아 사흘이 머다않고 내려오는 소설가 P교수, 초조대장경 유허지 발굴의 주역인 불교고고학자 C교수'''. 이들이 남이 가지않는 먼 길을 마다않고, 신발끈을 조여매는 까닭을 모두가 알게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지역문화 절대공감의 시대를 모두에게 열어 보일 수는 없을까.

어디론가 곧장 나아갔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방향을 조금씩 틀게 되어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현상. 자신은 똑바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빙빙 도는 현상. 이 '환상 방황'이라고도 하는 '링반데룽'현상은 산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문화의 링반데룽 현상에 걸린 사람들은 일상에서 일탈을 꿈꾸는, 바로 우리 자신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어젠다 없는 문화도시의 시민들은 몇 차례나 이 현상을 겪으면서 살아갈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우리에게 나침반이 되어주는 사람들을 나는 '어처구니'라고 부르고 싶다. 또한, 지역의 역사, 지역민의 애환 속에서 반듯한 이야기를 끌어오기 위해서는 수많은 퍼즐들을 맞춰서 당당한 '터무니'를 찾아내야 한다.

'어처구니'는 '상상 밖의 큰 사람이나 사물'을 일컫는 말이고, '터무니'는 '터를 잡은 자취, 정당한 이유나 근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단어 뒤에는 문장 호응상 언제나 '없다'라는 말이 붙지만,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는 일들이 다반사인 문화판에서 스스로 어처구니가 되고, 또, 터무니를 찾느라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해에는 만나고 싶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과, 먼 길을 걸어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결과적으로는 같은 제자리라도 한 쪽은 길이 없고, 다른 쪽은 길이 있는 것이다. 번지레한 성과만 기대하는 문화는 이제 거두어야 한다. 문화는 그야말로 도덕적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형성에서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는가.

세모(歲暮). 갈 길은 먼데, 어김없이 날은 저문다. 말 그대로 시간만 저물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분들의 꿈, 용기, 열정 그리고 그들 자신인 '어처구니'와 그들이 찾아내는 당당한 '터무니'도 언제나 제자리에 반듯하게 있었으면 좋겠다.

아시다시피, 걸음은 끝나도 길은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열리는 길은 새 걸음을 기다릴 것이다.

김정학(천마아트센터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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