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를 지키기 위한 민초들의 몸부림!
울릉도·독도를 비워둔 때가 있었다. 공도정책으로 아무도 쉽게 드나들지 못하던 때 일본인들이 몰래 찾아와 불법 어업과 벌목으로 분탕질을 하면서 주인행세를 하자 안용복과 같이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 국법을 어기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본인들을 몰아낸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654년 평민 출신으로 태어난 안용복은 1693년 일본인들이 울릉·독도에 불법으로 잠입해 어업을 하고 있던 현실을 목격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직감했다.
그는 일본에 끌려갔다 풀려난 뒤 국경을 넘은 죄로 조정에서 모진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선조때부터 지켜온 우리 삶의 터전을 빼앗으려는 일본국과 담판을 짓기위해 1696년 5월 또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목숨을 내놓고 한 일로, 구국의 정신이 바탕이 된 것이다.
그뿐인가. 자신이 직접 에도의 관백을 만나 울릉·독도가 조선 땅인 연유를 밝히기를 주장했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자신의 이익을 탐하는 데에만 급급했던 대마도주의 죄상을 밝히는 고소장을 낸 일 등은 봉변을 자처한 일일 수도 있었다.
안용복은 담대했다. 그의 기세에 놀란 돗토리 번주는 1696년 1월 조선에 전달할 울릉·독도 도해금지 봉서를 숨기고 있다가 오오야 무라가와 가문에 전달했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대마도주는 에도막부의 도해금지령을 조선에 전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자칫 일본 관리의 묵인 아래 일본 어민들이 계속해온 노략질과 울릉·독도 주변해역에서의 어업행위도 막을 내렸고, 막부의 도해금지령으로 국가간의 경계선 등 모든 일을 원상태로 돌려놓았다.
3년에 걸쳐 이뤄진 안용복의 목숨을 건 행로는 지금 우리가 한국의 독도영유권을 재확인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증거가 되고 있다.
안용복의 놀라울 만큼 담대한 영웅적 모습은 많은 시대를 뛰어넘는 인생의 지침이 되고, 이 감동의 역사 드라마는 우리에게 진정한 용기가 한계를 극복하고 원칙과 소신을 지켜나가는 길임을 보여준다.
(강경혜 독도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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