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강조했던 우리 시대의 스승
「옷을 입지 않은 임금을 보고 벌거벗었다고 말한 소년의 우화는 그 소년의 순진함이나 용기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진실은 반드시 진실대로 밝혀지게 마련이라는 인간생활의 진리를 말하려는 것만도 아니다. 가장 어리석은 소년에 의해서 온 사회의 허위가 벗겨지기까지 그 임금과 재상들과 어른들과 학자들과 백성들은 타락과 자기부정 속에서 산 셈이다. 인간 해방과 사상의 자유의 역사는 어차피 독선에 대해 회의가, 권위에 대해 이성이 승리를 거두는 긴 투쟁의 되풀이임에 틀림없다.」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리영희 선생은 언론인으로서 암흑과 무지, 우상이 지배하던 우리시대에 지성과 통찰, 이성을 일깨우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의 글은 진실에 목말라하던 많은 이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1977년 출간된 『우상과 이성』에서 선생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쓰는 괴로움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리영희 선생은 1929년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면에서 태어났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하여 7년간 복무했으며, 제대 후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역임했다.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4번 해직되었고, 3번 투옥되었다. 1980년대 내가 대학에 다닐 무렵, 선생은 대학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책들의 저자였다. 많은 젊은이들이 선생의 책을 읽고 토론하며 밤을 샜다. 그들에게 선생은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지성의 횃불이었다.
자신의 정치적 반대자에 대해 빨갱이, 좌익의 딱지를 붙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던 세태에 대해 선생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 '진실'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左)와 우(右)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균형잡힌 감각과 시각으로만 인식될 수 있으며,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잡힌 이상적 인간과 사회를 목표로 삼고 염원한다고 말했다.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며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는 사회를 꿈꾼 것이다. 선생은 '사상의 은사'로 젊은이들에게 존경받았지만 '의식화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한평생 고난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중요한 외교부 자료를 찾을 때마다 첫 대출자로 선생의 이름이 기록된 경우가 많아 공무원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할 만큼 철저하고 성실하게 진실을 탐구하였다.
2000년 말, 선생이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조금 회복되자 한길출판사에서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과 대담 형식으로 선생의 삶과 사상을 육성으로 풀어낸 책이 바로 『대화』이다. 이 책에는 식민지 조선에 태어나서 전쟁을 겪으며 언론인이 된 과정, 최고 국제문제 기자로서 베트남 전쟁을 지켜보며 느낀 고뇌,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찾기 위해 현대 중국혁명을 연구하게 되는 과정, 깨어있는 언론인으로, 또 학자로서 겪은 고초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선생은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혹시 기억이 흐려지면 실수를 할까봐 건강이 나빠지기 전에 절필을 하고, 한평생 권력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깨끗이 살다 간 선생의 꼿꼿한 삶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참 언론인이자 지식인으로 살다 간 리영희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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