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미술은 풍부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근대 미술을 논할 때 대구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미술계의 수많은 별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현재 대구에서 한 해에 배출되는 미술대학 전공자들은 1천여 명이 넘는다. 역사성이라는 씨줄, 현재성이라는 날줄이 엮이면서 대구의 미술은 다른 도시와는 다른 독특한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다. 현재도 대구 출신의 작가들이 전국을 누비며 활동을 하고 있다. 구상과 현대미술 등 다양한 장르에서 폭넓은 인재를 배출한 덕분이다.
하지만 미술에 있어 대구는 여전히 빈곤하다.
◆ 대구시립미술관, 어디로
대구시립미술관은 1997년 첫 논의가 시작되면서 올해 완공까지 10년 이상의 진통을 겪어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미술관의 갈 길이다.
대구시립미술관은 내년 5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를 3개월가량 앞두고 개관하기로 했다. 하지만 개관 6개월을 앞두고 있는 현재 미술관 직원은 고작 9명. 전체 직원 규모 35명 가운데 4분의1 만이 충원된 상태다. 미술관의 민간투자사업(BTL) 방식도 문제가 되고 있다. 대구 경실련은 최근 성명서를 내고 시립미술관이 민간투자사업으로 건립되면서 재정사업에 비해 과다한 건축비, 임대료로 운영예산 제약과 미술관 운영의 이원화 등 혼선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구시립미술관의 개관을 앞두고 더욱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김용대 대구시립미술관장은 "시민들의 교육기관으로서 미술관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관 컬렉션은 현재까지 20억원을 들여 94점을 구입했고 내년 미술품 구입비에는 15억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다.
김 관장은 이어 미술관의 방향성에 대해 "1920년대 근대 미술, 그리고 1970년대 현대 미술에서 보여준 대구 미술의 진보성을 대내외적으로 내보일 수 있도록 기획전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립미술관 건립을 오랫동안 지켜본 지역 미술계는 미술관의 앞날에 주목하고 있다. 한 큐레이터는 "미술에 관한 모든 역량이 미술관으로 초점이 맞춰져야 할 시점"이라면서 "십수 년간 시간을 끌어온 미술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는 만큼 대구시립미술관이 제대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심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 미술 역사가 바로 콘텐츠
대구는 한국 근대 미술이 꽃피웠던 곳이다. 석재 서병오, 이인성, 이쾌대 등 당대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모두 대구에서 태어나 활동했다. 그동안 수십 년간 문화계 안팎에서 이들을 현창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주장을 되풀이해 왔지만 그동안 문화 정책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김태곤 대백프라자 갤러리 큐레이터는 "대구는 정말 많은 미술 자원을 가진 도시"라고 말했다. 김 큐레이터는 이상화 생가, 서상돈 본가와 함께 대구 최초의 서양화가 이상정 생가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정 생가는 서상돈 본가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보존에 대한 별다른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면서 "이런 근대 가옥을 구입해 전주의 한옥 마을처럼 보존하면 관광 상품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대구 근대 화가인 서동진, 박명조, 배명학, 손일봉 등의 생가 및 거주했던 주택에 이정표를 구축해 스토리텔링에 활용하고 한국 전쟁 당시 대구에 살았던 이중섭, 청전 이상범 등 유명 작가 관련 공간에 대한 고증 및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용대 대구시립미술관장은 대구에 대해 "약전골목 인근 예술가들의 생가, 근대 건축물 등을 활용해 대구의 대표적 이미지가 될 수 있는 명품 거리를 꾸민다면 큰 시너지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 미술 저변의 확대
대구가 진정한 미술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 미술계의 생각이다.
이장우 대구미술협회장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동성로, 두류공원 일대에 화가들이 직접 시민과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러시아, 유럽 등에는 시내 곳곳에서 작가가 자신의 소품을 판매하거나 시민들의 인물 스케치를 해주는 등 시민들이 미술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면서 "비록 작은 작품이라도 구입하게 되면 미술에 대한 관심이 싹트게 된다"고 덧붙였다.
미술전문잡지 아트인커처 김복기 편집장은 5월 대구문화예술회관 개관 20주년 기념 세미나 '신진작가 발굴 및 후원 프로그램 현황과 전망'에서 "이제 지자체의 미술 정책은 차별화, 특성화 전략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고 말했다. 대구에 맞는 차별화가 어떤 것인지 더 늦기 전에 되짚어 봐야 할 때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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