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군인의 길

입력 2010-11-29 10:45:11

후세에 본보기가 되는 옛 이야기를 되새겨 보면 일이 흘러가는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소 각색이 됐다 하더라도 그 순간순간은 긴박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슬아슬하기조차 하다. 어느 한 순간이라도 그 아귀가 삐걱거렸다면 지난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손자(孫子)로 잘 알려진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손무는 오나라 왕 합려의 초청을 받았다. 합려는 그를 시험하기 위해 궁녀로 군대를 조직해 보라 한다. 손무는 합려가 가장 아끼는 후궁 2명을 좌우대장으로 삼아 훈련에 들어가지만 궁녀들이 말을 들을 리가 없다. 이에 손무는 병사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지휘관 책임이라며 좌우대장으로 삼은 후궁의 목을 베라고 명령한다. 이를 지켜보던 합려가 말렸지만 손무는 군대에서는 장군의 권위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지휘를 위해서는 왕명을 듣지 않을 수도 있다며 후궁을 참수했다.

손무나 합려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것으로 끝이었을 터다. 우선 손무는 처음부터 후궁을 참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충 성의만 보이며 스스로 목숨을 위태롭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합려가 평범한 군주였다면 왕명을 거역한 손무를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합려는 그에게 군권을 맡겼고, 이 결단은 오나라가 일시적으로나마 춘추전국시대 최강자로 올라서게 하는 계기가 됐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 사건으로 뒤숭숭한 가운데 김태영 국방장관이 사임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연평도 도발 때 김 장관은 국회 예결위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이 때문에 국가안보회의에도 늦었다. 이에 앞서, 본인은 부인했지만 대통령이 확전 방지를 지시했다고 말해 국민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김 장관으로서는 이래저래 일의 아귀가 들어맞지 않은 셈이다. 지난 일에 가정은 필요가 없지만, 김 장관은 연평도 사건을 보고받자마자 국회를 뛰쳐나왔어야 했다. 확전 방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강력한 대응을 주장하는 것이 옳았다. 이런 일은 손무가 군대의 규율을 위해 왕명을 거역하고 후궁을 참수했듯 군 최고 지휘자로서 충분한 명분이 있다. 물론 그렇게 했다 한들 천안함 사태 이후 연평도 도발까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책임으로 장관직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군인이었던 그가 명예는 지키지 않았을까 싶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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