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나 이런 사람이야

입력 2010-11-29 08:05:14

양아치란 강자에게 더없이 약하고 약자에게는 턱없이 유세를 부리는 무리를 일컫는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주먹질하는 꼴이기는 하지만, 부당하게 엎어졌던 만큼 누군가에게 부당하게라도 되돌려받는 것이 그 치들 셈법으로야 공정한 거래인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뭔 벼슬아치라는 알량한 완장이라도 내두르는 양아치들의 천태만상은 가히 가관일 것이다.

그러잖아도 밑바닥 B급 무비를 신봉하는 충무로 액션키드로 호가 난 류승완이 심기일전, 마음을 다잡고서 그려내는 이 시대의 만화경이라, 절로 군침이 돈다. '부당거래'(2010)는 에둘러 가지 않는다. '대국민 조작이벤트. 너 오늘부터 범인해라!-각본 쓰는 검사, 연출하는 경찰, 연기하는 스폰서. 더럽게 엮이고 지독하게 꼬인 그들의 거래가 시작된다!'라고 내걸린 문구처럼, 아예 작심을 하고서 덤벼드는 영화다.

그렇다. 영화 속 세계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검사 영감님, 경찰 나리, 건설회사 사장님 등 그럴듯한 허울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실은 똑같은 양아치들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센 놈이라는 정글의 법칙만 적용된다. 다만 어느 연줄이 더 질기고, 배경이 막강한가에서 승패와 생사가 갈릴 따름이다.

그동안 류승완의 영화에서 명멸하였던 밑바닥 숱한 양아치들은 말보다 주먹이 앞서더라도 쪽팔리게 뒤통수치지는 않았지만, 이 진흙탕에서는 더럽고도 지독한 하이에나끼리 이리 엮이고 저리 꼬여있을 뿐이다. '사회와 영화를 제대로 접속시키는 류승완의 진화!' '권력의 뒤틀린 먹이사슬을 장르로 시원하게 헤집어 낸 최고작' '장르 영화와 현실비판의 정당거래'라는 환호성 속에서 감독은 혹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영화 안과 바깥이 엇섞이고 헷갈리는 관객들만 혼란스럽고 못내 씁쓸하다.

"영화를 본 뒤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는 평은 관객의 양심이 작동했다는 증거다. 거기에서 나는 희망을 본다. 특히 30, 40대 넥타이 부대의 호응은 당연하다고 본다. 먹고살기 위해 무릎을 꿇어본 사람이면 이 영화가 절절할 것이다. 10, 20대한테는 범죄 스릴러 이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인터뷰 속 감독의 바람처럼, 영화에 대한 불편한 뒷맛이 채 삭이지 못한 몇몇 앙심이 아니라 아직 살아있는 더 많은 양심에서 비롯되었기를 함께 소망한다.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아니면 쉬어. 알았으면 뛰어.' 영화를 보는 내내 환청처럼 들려오던 노래다. 신조어 사전에 당당하게 올려진 '검사스럽다'라는 말의 비릿함도 새삼 곱씹어보았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의사스럽다'라는 말이 아직도 등장하지 않았음에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어야 하나, 아직까지는 올라오지 않았음에 냉가슴이라도 앓아야 하나?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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