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파랑새를 찾아서

입력 2010-11-29 07:41:14

춘천MBC에서 호스피스병동인 평온관을 취재하러 왔다. 그들은 자살예방 다큐멘터리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고 있었다. 티베트의 조장(鳥葬)도 화면에 담아왔다. 배낭차림의 촬영팀은 마치 동화 '파랑새'의 치르치르와 미치르를 닮았다. 주인공이 찾아나서는 파랑새는 행복을 의미하고, 결국 파랑새는 다른 곳이 아닌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이야기이다. 대통령도 자살하는 우리나라의 파랑새는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을까?

박종국(가명·55) 님이 호스피스 사진전에서 대상을 받은 사진 액자를 고쳐 주었다. 진료실 앞에 엉성하게 걸어 둔 것이 마음이 쓰였나보다. 그는 말기 담낭 암 환자이다. 담즙을 배출하는 관과 소변 줄까지 꽂고 있었지만, 수액제 거는 기구의 바퀴까지 깨끗하게 손질할 만큼 부지런했다. 시설 관리팀에 부탁하면 된다고 말렸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병동 구석구석 손을 보았다.

그는 조금 남은 삶을 봉사하면서 살고 있었다. 180cm의 큰 키에 가무잡잡한 그는 303호 방장(房長)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호스피스의사가 편해질 때는 호스피스를 잘 이해하는 환자나 보호자가 입원한 경우이다. 좋은 환자는 최고의 상담자가 될 수 있다. 암이 없는 의료진이 '죽음에 대한 수용'을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오후 회진 때, 그가 학이 그려 진 동양화 한 점을 주었다. 평온실(임종실)에 가보니 조금 쓸쓸해 보여서 기증한다고 했다. 슬프게도 자기의 마지막 공간까지 몰래 가 보았나보다. 평온실 한 벽면을 모두 장식할 정도로 큰 작품이었다. "결혼할 딸에게 줄 그림은 따로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한국적인 분위기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났어요. 이곳이 진짜 사는 곳이지요." 한국적인 평온실을 꾸미고 싶었는데 그가 나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 고맙다는 말 대신 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평온관에 3년 근무하면서 400여 명의 사망진단서를 썼다. 환자의 죽음을 통해서 슬픔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의 죽음을 상상한다. 자신의 죽음을 볼 수 없는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서, 삶과 죽음을 고민하게 된다.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을 쓰기 시작할 때 먼저 생각하는 것은 마지막 문장이다. 그래야지만 같은 흐름으로 글이 쉽게 쓰여진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자신의 마지막을 보게 되면, 일관성 있는 삶을 살아 갈 수가 있고, 지금 삶이 힘들어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삶과 죽음의 비밀이야기'가 있는 평온관에서 취재팀의 파랑새를 찾았으면 좋겠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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