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좋은 대구' 생각하며 '마트 금단증세' 떨쳤죠

입력 2010-11-26 10:09:52

[대형마트 끊고 살기] <7> 슈퍼우먼의 가족은 힘들어!

슈퍼우먼 체험단이 시장을 누비는 한 달 동안 함께 고생(?)해 준 가족들이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식탁이 풍성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주일치 장을 한꺼번에 실어와 냉장고에 꽉꽉 넣어두고는 뭐가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이제는 늘 신선한 채소와 생선을 사와서 한 상 가득 차려내니 절로 입맛이 돋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애기를 업고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을 돕는 일이기도 하고요. 체험단 우유미 씨 제공
슈퍼우먼 체험단이 시장을 누비는 한 달 동안 함께 고생(?)해 준 가족들이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식탁이 풍성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주일치 장을 한꺼번에 실어와 냉장고에 꽉꽉 넣어두고는 뭐가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이제는 늘 신선한 채소와 생선을 사와서 한 상 가득 차려내니 절로 입맛이 돋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애기를 업고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을 돕는 일이기도 하고요. 체험단 우유미 씨 제공

대형마트가 대구에 진출한 지 14년째. 그동안 사람들은 대형마트에 '너무' 길들여졌습니다. 꼭 장을 보는 공간뿐만이 아니라 부부가 손을 잡고 산책을 가는 곳도, 주말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나들이를 가는 장소도 단연 '마트'가 1순위로 꼽힙니다. 그렇다 보니 슈퍼우먼들이 대형마트 끊고 살기 한 달 체험을 하는 동안 이들의 가족 역시도 심각한 '금단증세'를 앓아야 했고, 전통시장을 통해 누리는 즐거움도 함께 누렸습니다.

◆가족들이 느끼는 변화

슈퍼우먼들의 가족들이 이야기하는 '대형마트 끊고 살기'의 가장 큰 장점은 '식탁이 풍성해졌다'는 것입니다. 매일 시장을 헤집고 다니면서 신선한 재료를 사와 즉시 반찬을 해서 상에 올리다 보니 입이 먼저 알아보는 것이죠. 제갈민(46·대구 동구 지묘동) 씨는 "체험 초기 시장에 가서 고등어 한 마리를 사다놓고는 어떻게 손질을 해야 할지 난감해 고생고생했는데 딸아이들이 정말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것을 보고는 신선한 재료는 입이 먼저 알아보는구나 싶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신미영(44·달서구 진천동) 씨는 이제 시장 다니기에 재미를 들여 지난 주말에는 내친김에 정선5일장까지 나들이를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더덕이랑 곤드레나물을 일년치 사왔다고 하는데요. 미영 씨는 "시골 오일장 한번씩 갔다오면 생활의 활력이 된다"고 했습니다.

정경준(51·수성구 만촌1동) 씨의 고등학생 딸은 "근방에 시장이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면서 "시장 아줌마들이 아주 친근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야참을 먹지 않게 돼 다이어트가 되면서 돈도 아낄 수 있었다"고 효과를 꼽았습니다. 하지만 한창 세상의 흐름에 민감한 여고생의 특성상 전통시장을 다니는 '쏠쏠한 재미'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경준 씨는 "늘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대형마트에 들러 떨이로 싸게 사는 음식을 사들고 오는 것이 일과였던 아이였는데 당장 놀이터를 잃어버린 어린아이 같았다"며 "줄서서 기다린다는 대형마트 피자 구경도 못해봐서 유행에 뒤지는 느낌이 든다는 푸념도 하더라"고 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에서부터 각종 재활용 쓰레기는 확실히 줄었습니다. 쓰레기 처리 임무를 담당했던 최명희(32·경산시 옥산동) 씨의 남편도, 미영 씨의 막내 초등학교 5학년 아들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쓰레기 한 소쿠리 버리는 데 1천원의 용돈을 얻어 썼던 미영 씨 아들은 "대형마트를 갔다오는 주말이면 세 소쿠리씩 나왔는데 지금은 벌이가 확 줄어 가난하다"며 뾰로통하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적응

김정희(34·북구 복현동) 씨는 "언니가 시장에 다니면서부터 반찬 가짓수가 늘었고, 수입과일보다는 신선한 제철과일을 섭취하게 됐다"며 좋아하는 30살 된 미혼 여동생에게 "결혼 후 골목상점과 전통시장을 이용하면서 사는 데 동참할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동생의 대답은 역시나였습니다. "생각은 있지만 실천이 힘들 것 같다"면서 "장보는 데 많은 시간을 쓰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대형마트 배달서비스를 이용하겠다"고 했다는군요. 전통시장이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내 문제'가 되면 대형마트를 선호하게 되는 겁니다. 정희 씨는 "야근이 잦은 맞벌이 부부에게 시장은 그리 쉬운 선택이 아닐 것 같다"며 "이런 문제에 대한 보완책도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제갈민 씨의 두 딸은 엄마의 슈퍼우먼 생활을 누구보다 적극 격려해 준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대형마트를 가지 않는 생활은 쉽지 않았나 봅니다. 고3과 중1짜리 두 딸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시작하자 작은 딸은 "가끔 궁상맞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공산품은 아무래도 동네 슈퍼마켓이 더 비싼 경우가 있기 때문에 치약은 끝까지 꼭꼭 눌러쓰고, '아껴쓰라'는 잔소리도 늘어났다는 거죠. 결국 아이들은 "아이스크림과 스낵이라도 몇 개씩 사두고 먹을 수 있도록 해 주면 앞으로도 계속 대형마트를 가지 않고 동네 상점을 이용하도록 하는 데 동의하겠다"고 합의점을 찾았습니다.

미영 씨네는 슈퍼우먼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 남편과 지방경제에 대한 토론을 자주 하게 됐다고 합니다. 한때는 집 앞 대형마트를 매일 출근하다시피해서 남편에게 "네가 대형마트를 먹여살린다'는 잔소리를 들었던 미영 씨였지만 이제는 남편과 함께 '지방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하네요. 미영 씨는 "작은 가게들이 잘 되면 지방의 중소기업이 잘 돌고, 지방세도 많아지고, 대구가 지금보다는 살기 좋아진다"며 "이번 프로젝트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지 말고 여러 채널에서 자극을 주고 홍보를 해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한답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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