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이지원 대구혜인학교 교감

입력 2010-11-23 09:59:50

"늦깎이 학생들 향학열에 배울 점 더 많죠"

대구시 달서구 신당동 한 건물 지하엔 주경야독(晝耕夜讀)하는 나이든 학생들과 주독야훈(晝讀夜訓)을 실천하는 대학생들이 꾸려가는 대구혜인학교가 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한 발짝 내디디면 '뜻이 있는 자는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편액이 눈에 띈다. 한눈에 봐도 야학의 열정이 솟구치는 서체다.

이곳 교사이자 살림꾼인 이지원(28) 교감. 만 5년째 혜인학교 영어교사로 인연을 맺고 있다. 그는 올해 계명대 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모교 법학과에서 법학을 가르치는 강사다.

"2004년 대학 2년 때 교내 교사모집 포스터를 보고, 선배로부터 권유를 받아 혜인학교 교사가 됐어요. 다음해 서울대학교 교류학생으로 잠시 대구를 떠나 있을 때도 꼭 복직하려고 마음먹었죠."

교무실 한 곳과 교실 두 곳을 둔 혜인학교는 공부시기를 놓친 학생들을 대상으로 중등부와 고등부로 나눠 검정고시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교재비와 수업료 등 모든 게 무료다.

"야학교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대학생활이 피곤할 때마다 더 가고 싶은 곳이 혜인학교였죠. 학생들의 향학열이 말도 못하게 높아요.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배울 점이 훨씬 더 많아요."

혜인학교는 대부분 계명대 학생들로 구성된 12명의 교사진에다 40대에서 50대까지 직장인 13명, 청소년 7명(여학생 4명) 등 학생 20명이 다니고 있다. 수업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7시부터 3시간 동안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초등과정도 가르친다.

"가르치고 돌아설 때 느끼는 보람은 야학교사가 아니면 몰라요. 학생 모두가 힘들게 살아왔고 그만큼 배움에 대한 열의가 강하기 때문에 절대 허투루 가르칠 수 없죠."

학교 운영은 매학기 달서구청이 지원하는 400만원과 십시일반으로 내는 교사들의 돈, 선배 교사들이 지원하는 후원금으로 꾸려간다. 이 씨는 가르치는 일 이외에도 혜인학교 살림살이를 도맡고 있다. 얼마 전까지 운영을 맡았던 선임자가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교무부장이었던 이 씨가 올 3월부터 운영 책임을 맡게 된 것.

혜인학교는 교재비, 난방비, 전화비, 건물임대료 등을 자체 조달해야 한다. 매월 100% 출석한 학생에겐 우수상과 조그마한 선물도 준다. 소소하게 드는 비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산의 테두리 안에서 살림을 살아야 하지만 닥치는 일은 항상 넘치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후배 교사들 식사비 등은 이 씨의 몫이다. 한때 교사가 부족해 이 씨는 3과목을 가르친 적도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부모님께서 봉사활동 현장에 자주 데려가셨어요, 그래서인지 제게 봉사는 특별한 일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고 친근한 일상과 같아요."

이 씨는 학부생 때도 30시간 현장봉사를 해야 하는 '사회봉사' 과목을 기꺼이 이수했다. 혜인학교는 고등부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게 곧 졸업이다. 졸업생 중 대학생이 된 제자들도 꽤 있다. 이 중 7, 8명은 이 씨가 강의하는 법학 관련 영어수업을 듣거나 리포트 작성법을 배우러 오는 이들도 있다. 올해엔 5명이 수시에 합격해 놓은 상태다.

"학생들과 엄마·아빠처럼 편하게 이야기하는 편이죠. 호칭도 '…씨'로 부르죠. 그럴 때면 다들 좋아해요. 본인들의 존재감이 돋보이기 때문이죠."

얼마 전엔 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이 혜인학교를 찾았다. 초등학교 자녀가 숙제를 묻는데 잘 몰라 했더니 자녀가 "엄마한텐 안 물어"라는 반응에 충격을 받아 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았던 것이다.

"주변에 간혹 나이 들면 부끄러워 배움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자신 있게 문을 두드리세요. 배움에는 정도도, 나이도 없으니까요."

배움에 목마른 이들에게 따뜻한 길잡이가 되고 있는 대구혜인학교 이지원 교감과 11명의 젊은 교사들은 자꾸만 움츠러드는 우리사회의 손길을 훈훈하게 녹이고 있다.

문의 053)581-1632.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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