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옛도심' 충돌, 대구市 비전제시 급하다

입력 2010-11-17 10:11:38

"중구 옛도심 공간 역사보존" vs "주민 재산권 침해"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대구 도심 공간과 건물들에 대해 대구시와 중구청은 보존과 복원을 통한 역사·문화·예술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주민들은 재건축을 통한 재산권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사안에 대해 근거 법령이 마련돼 있지 않아 해결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대구 도심 보존 공간 추진과 주민 재산권의 상생을 위한 법규 제정과 비전 제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이유다.

◆도심 보존과 주민 이해의 충돌=대구시와 중구청이 대구 중구 구도심(계산동, 성내동, 종로, 향촌동, 북성로 등) 일대에서 역사·문화 관광벨트 조성을 위한 도심재생사업을 추진하면서 도심 보존가치와 개인의 재산권이 충돌하고 있으나 대구시는 뾰족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한 개인사업자가 약전골목 내 옛 교남 YMCA와 이해영 정형외과, 한옥 등 대지 781.3㎡와 건물 693.58㎡(대구시 중구 계산동 2가 43번지 외 6필지)에 대해 지상 11층 규모의 도시형생활주택(원룸형 주택) 건축허가 신청서를 중구청에 제출했고, 중구청이 문화자원 보존이라는 차원에서 허가를 보류하면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 개인 사업자는 "해당 건축물이 역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임을 알았더라면 매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건축허가도 내주지 않고 그렇다고 시가 재매입하지도 않고 있어 피해가 크다"고 말하고 있다. 대구시가 법령 정비도 비전 제시도 못하고, 그렇다고 매입을 위한 예산 마련도 못한 채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하는 바람에 개인이 피해를 입은 극단적인 예다.

이외에도 일제시대와 1950년대, 60년대 건축물이 밀집돼 있는 대구시 중구 향촌동과 포정동 일대에서도 이미 수년 전부터 재개발을 요구하는 해당 지역 주민들과 보존가치를 주장하는 중구청 사이에 줄다리기가 계속되어 왔다. 이 지역은 현재 건축 경기 침체로 갈등이 다소 잠잠한 형국이지만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중구청 관계자는 "옛 YMCA 건축물을 철거하고 고층 건물을 신축할 경우 한방특화거리 이미지 및 문화유적지 경관이 훼손돼 문화관광 연계 기능이 약화돼 문화자원 보존을 통한 근대 경관 유지 및 활용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건축 허가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법령 미비로 지지부진=그러나 이 건축물에 대해 건물주가 사업 강행을 고집할 경우 현행 법령으로 제재할 수 없는 형편이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물이지만 건물을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건물을 보존한다는 이유로 무작정 '도시계획구역' 등으로 지정해 재건축이나 철거를 제한할 수도 없다. 충분한 보상이나 비전 제시 없이 재산권 행사를 제한할 경우 해당 주민들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한 예로 대구시 중구청이 지난 9월 계산성당(사적 제290호)으로부터 반경 200m 이내에서 건축, 개발행위를 할 경우 원지형보존 또는 층수제한(2구역 4층 이하, 3구역 12층 이하) 등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중구청 홈페이지에 공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해당지역 주민들은 "구체적인 주민 설명회도 없이 관청이 마음대로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절차를 시행하는 것이 옳은가?"라고 묻고 "대형 사업자인 현대 백화점은 허가를 내주고 소자본 사업자는 허가해줄 수 없다는 것이냐?"고 반발하고 있다.

물론 다급한 마음에 주민설명회조차 열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설령 '주민 설명회'를 연다고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도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대구시가 구체적 청사진 내놓아야=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은 "천년 고도 경주가 수십 년 동안 이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지 않느냐. 주민들에게 무조건 극단적인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며 "대구시가 철학적인 비전과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정책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구시 중구 구도심은 대구의 역사·문화·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 밀집된 지역이다. 당장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현행법에 근거해서 하나 둘씩 건축허가를 내주고 오래된 건축물을 허물어버리는 것은 대구가 가진 소중한 자산을 버리는 행위"라고 말하고 "시장(市場)이 요구하는 바가 있고 지방 정부가 플랜을 내놓아야 할 영역이 따로 있다"며 대구시가 정책의 우선순위를 생각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대구시의 한 관계자는 "향촌동 재개발 지역의 경우 민간 차원에서 조합을 구성하고,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대구시가 보존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특정 건물을 매입하더라도 재개발이 되면 강제 수용되기 때문에 설령 예산이 확보되더라도 매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주민과 대구시 사이에 '재개발이 능사가 아니다'는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며 새로운 사업을 통해 국비를 확보하고 나면 "보존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 그 가치에 맞게 보존될 경우 인센티브와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오래된 기와집을 보존하기 위해 기와를 새로 얹거나 가치 있는 건물을 통해 문화예술 상품을 판매하는 업소가 들어설 경우 인테리어 비용 등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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