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성의 오지를 달리다] 다이아몬드 울트라 레이스 참가기<1>

입력 2010-11-17 08:18:09

온몸이 얼어붙기 전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온몸이 얼어붙기 전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영화 25도에서 대회가 시작됐다. 주최 측은 모처럼 따뜻한 날씨라나.
영화 25도에서 대회가 시작됐다. 주최 측은 모처럼 따뜻한 날씨라나.
모든 것이 꽁꽁 얼어버리는 추위가 대회 기간 내내 우리를 괴롭혔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버리는 추위가 대회 기간 내내 우리를 괴롭혔다.
살기 위해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살기 위해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자신 있는 사람만 도전하라!'

처음부터 사하라사막을 달려서인지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어디를 달려도 두렵지 않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심리적 현상이고 육체는 매번 사서 고생한다. 그리고 나같이 평상시 운동을 안 하고도 장거리 레이스 완주율이 높은 사람은 어느덧 대회가 훈련이 되어 버린다. 그러다가 만난 대회가 '다이아몬드 울트라'다. 그런데 아무리 훈련을 안 했다 치더라도 기존 대회의 상식을 뛰어넘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의 대회에선 누구나 고생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게 된다. 감히 이야기한다. 다이아몬드 울트라는 정말 자신 있는 사람만 도전하라!

'록 앤 아이스:다이아몬드 울트라 레이스'(Rock and Ice: Diamond Ultra Race)는 캐나다 옐로나이프에서 열리는 스노 레이스다. 해마다 전 세계 100여 명의 극지방 레이스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2009년에는 나를 포함해 일본 친구 2명 등 3명이 아시아 선수로 최초 참가했다. 대회 방식은 225㎞를 6일 동안 스노 슈즈(눈이 많이 오는 산간지방에서 발이 눈에 덜 빠지도록 신는 눈 신발)를 신고 'Ski Pulk'라는 개인 썰매를 끌며 질주해야 한다. 팀 플레이가 허용되지 않는 혼자만의 시합이고, 경기 기간 동안 필요한 음식이나 장비를 개인 썰매에 싣고 가야 한다. 각 종목별 우승자에게는 상금으로 0.7 캐럿 EKATI 다이아몬드를 수여한다.

그리고 나와 일본 친구 유카꼬, 미호에게는 '333 레이스'(3개월 동안 3개 대륙 3개의 울트라급 대회를 연속으로 참가하는 333레이스는 3월 캐나다 다이아몬드 울트라, 4월 제주도 울트라 마라톤, 5월의 나미비아 레이스로 이어진다)의 첫 번째 관문인 대회였다. 이 대회를 완주해야만 우리가 목표하는 다음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의미가 생긴다.

2009 다이아몬드 울트라 레이스가 열린 대회 장소는 캐나다 북부인 '옐로나이프'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오로라가 아주 멋진 곳으로 최근 일본 드라마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통해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이렇다 할 정보가 없기에 불모의 땅이나 다름없었다.

어디를 봐도 눈밖에 안 보이는 옐로나이프에서 처음 만난 친구는 영하 15℃의 강추위였다. 물론 나중에 영하 40℃를 겪으면서 영하 15℃가 얼마나 따뜻한 날씨인지를 알았지만 처음에는 얼어 죽는 줄 알았다. 봄의 따뜻함에 적응돼 있다가 갑자기 만난 영하 15도의 날씨에서는 거의 동면 수준의 움직임을 보인다. 시차보다 먼저 추위에 적응하는 일이 커다란 숙제였다. 추위에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보면서 외국 참가자들은 배꼽을 잡는다. "니들도 따뜻한 나라에 살아봐!" 얼굴은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속으로는 강 펀치를 날리고 싶었다.

우리들은 대회 시작 전 이틀간을 대회본부인 매트릭스 빌리지(Matrix Village)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매트릭스 빌리지는 대회 운영 캠프로 임시 마을이다. 그곳에는 숙박이 가능한 대형 벙커 4개와 화장실, 창고, 회의장이 있었는데 가건물 치고는 완성도에 있어 너무나 훌륭했다. 나는 이전까지 남극 레이스를 2번 완주했지만 여기서는 스노 레이스가 생초보다. 주문한 썰매(Ski Pulk)를 받아서 조립하고 착용을 해보니 생각보다 느낌이 좋다. 썰매는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극지 탐험이나 전 세계 스노 레이스에서 필요한 기본 장비다. 거의 1시간에 걸친 복잡한 장비 검사를 통과한 후 우리들은 나름대로 적응 훈련도 하면서 대회 전까지 주어진 설원의 자유를 최대한 만끽했다.

어느 대회건 출발 시간에는 정신이 없다.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많은 사람의 환호 속에 '좀비 3인방'의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대회는 첫날 45㎞의 눈길과 트레일 코스를 가야 한다. 출발 전 진행자가 현재 기온이 영하 25℃로 따뜻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다행이라며 만세를 부른다. 미친 인간들 같다. 우린 죽으라는 소리 같은데 영하 25℃가 따뜻하다고 만세를 부르다니….

새벽에 잠깐 해가 보인 이후로 흐렸던 날씨는 예상대로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눈이 내리며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추위에 적응하기도 전에 오른쪽 스노 슈즈에 문제가 생겼다. 신발과 플레이트를 연결하는 부분의 나사가 떨어져 나가면서 신발과 플레이트가 분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을 스노 슈즈 없이 가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시작하자마자 포기해야 하나?' '남아있는 38㎞는 어떻게 가지?' '아니 앞으로 5일을 어떻게 버티지?'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허무하게 끝내기에는 너무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그냥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하염없이 걸어갔다.

간신히 도착한 두 번째 체크 포인트를 지나자 화이트 아웃(심한 눈보라 등으로 주변이 온통 하얗게 보이는 현상)을 만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태가 생겼다. 코스가 안 보이기에 바람이 조금 약해지자 움직이며 길을 찾는데,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체크 포인트부터 따라 오던 강아지가 어느 순간부터 길 안내를 시작한 것이다. 몇m 앞에서 자기를 따라 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아까 텐트에서 과자를 준 보답으로 도와주는 건지 하늘에서 보호를 해주는 건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화이트 아웃을 벗어나자 강아지는 자기 임무를 완수한 듯 꼬리를 흔들며 지나온 체크 포인트로 돌아간다. "고맙다"라는 말을 건네며 손을 흔들어 떠나 보낸다.

코스는 호수와 트레일지역을 번갈아 지나는데, 호수지역은 무릎까지 빠지는 미끄러운 눈밭이고 트레일지역은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진 자작나무 숲이다. 첫 번째 체크 포인트 이후 20㎞ 정도를 스노 슈즈 없이 오로지 힘으로만 왔다. 체력은 한계를 느껴 거의 탈진 상태고 허리와 다리까지 아파오기 시작한다. 기온도 저녁이 되자 영하 30도로 뚝 떨어진다. 좋든 싫든 계속해서 움직여야 한다. 잠시라도 멈추면 순식간에 몸이 얼어 버린다. 진퇴양난이다.

궁하면 통하던가. 진행 요원이 나의 모습을 보고 공구함을 가지고 와서 망가진 스노 슈즈를 고쳐주겠다고 한다. 웬 생큐! 얼마 후 철사를 이용해 임시로 고정한 스노 슈즈를 신을 수 있었다.

3번째 체크 포인트를 지나 마지막 골인 캠프로 가는데 갑자기 하늘 문이 열리며 오로라가 환상의 자태를 뽐낸다. 처음으로 만난 신비스런 오로라. 우리들의 움직임에 오로라도 같이 장단 맞춰 춤을 춘다. 오로라는 신기하게도 우리들이 가는 방향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출애굽의 모세가 광야에서 불기둥으로 길을 찾듯이 지금의 오로라는 빛의 기둥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0시 18분. 45㎞를 오는데 꼬박 15시간 18분이 걸렸다. 단지 하루 만에 일주일치 에너지를 모두 소비하게 만드는 엄청난 레이스였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즐거움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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